강남 신사동 7층 빌딩 산 50대男 월세 소득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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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김모(59)씨는 지난 2월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지상 7층(지하 2층)짜리 소형 빌딩을 48억원에 매입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신사역과 카페거리인 신사동 가로수길이 걸어서 3분여 거리로, 1층엔 커피숍이, 2~5층엔 사무실이 입주해 있다. 주거시설인 6~7층은 복층으로 꾸며 김씨가 직접 거주할 계획이다. 그는 “매달 들어오는 월세가 1260만원(보증금 4억원)으로 투자 대비 수익은 높지 않지만 자산가치가 높아 매입했다”고 말했다.

 주택시장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지만 서울 중소형 빌딩시장에는 시중 자금이 흘러들고 있다. 시가 10억~300억원 정도인 지상 10층 안팎의 오피스·상가 빌딩에 개인 투자자와 리츠(REITs·소액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주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펀드) 등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31일 빌딩거래정보회사인 알코리아에셋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중소형 빌딩 시장에는 3조원이 유입됐다. 이 회사가 여관 등을 제외한 서울 업무·상업용 건물 5만여 동의 소유권 변동을 분기별로 조사한 결과다. 지난해 형성된 서울 아파트시장(15조원, 부동산114 조사)의 21%에 달하는 수준이다. 거래 규모는 525개 동으로 대형 오피스 건물을 포함해 지난해 서울에서 준공된 업무·상업용 건물(351동)보다 훨씬 많다.

거래 물량은 전체의 30%인 160개 동이 강남·서초구에 있고 고액 자산가 등 대부분 개인 투자자(72.5%인 381개 동 매입)들이 사들였다. 알코리아에셋 황종선 대표는 “여관을 비롯해 조사 대상에서 빠진 상업용 건물 거래를 감안하면 지난해에만 3조5000억원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사옥으로 쓰려는 법인과 임대수익·시세차익을 얻으려는 리츠 같은 간접투자자의 발길도 이어졌다. 빌딩컨설팅회사 프라퍼트리의 고신 대표는 “올 들어서도 고액 자산가 위주로 중소형 빌딩 매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매수세가 늘면서 호가도 오름세지만, 경기 침체와 공급 과잉으로 중소형 빌딩 임대시장 사정은 좋지 않다. 임대수익률도 바닥이다. 실제로 지난 1월 75억원에 계약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이면도로변 4층(지하 1층)짜리 상가 빌딩은 보증금 3억5000만원에 월 1625만원으로 임대수익률은 연 2.7%에 불과하다. 재산세 등 각종 세금과 공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임대수익이 은행 예금 이자만큼도 안 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도 중소형 빌딩으로 돈이 몰리는 것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경기 침체로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이다. 유로존 위험으로 주식이나 채권시장은 변동성이 커졌고 주택시장은 무너진 지 오래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중소형 빌딩은 당장 임대수익이 낮더라도 자산으로서 안정성이 높고 시세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어 자산가가 선호한다”며 “고액 자산가들은 대부분 최소 5년 이상 보고 투자한다”고 말했다. 자산가들이 임대수익 같은 사용가치(value in use)보다는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교환가치(value in exchange)에 무게를 더 두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개발 호재가 없는 데도 건물 주인이 호가를 올리는 경우도 많다”며 “공실이 줄지 않는 상황에서 대출 금리가 오를 경우 자칫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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