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다수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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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6·25동란 중 아마도 해군 정훈 감실에서 만든「포스터」였다고 생각된다. 안광이 형형한 촌 노부가 오른 손 식지를 꼿꼿이 펴든 채 『너는 조국을 위해 무엇을 했나』라고 쏘아보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이 도안의 출처는 영국. 1차 대전 중 「키츠너」란 영국화가가 그린 유명한 모병「포스터」를 슬쩍 표절했던 것. 그런데 이 그림이 이번엔 「프랑스」의 선거 「비라」로 등장했다.
연착의 「선데이·타임즈」지에 실린 사진을 보면, 여기서는 역시 같은 도안의 그림에 큰 글씨로『라·마조리테·세·부』(그대는 다수당)라고 쓴 「포스터」가 나붙고 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오는 5일로 박두한 「프랑스」총선에서의 집권당의 구호. 그런데 이 「포스터」위에는 또한 붉은 먹 글씨로 『히틀러·논』(「히틀러」는 싫다)이란 낙서가 큼직큼직하게 갈겨 씌어져있어 이채롭다. 여기서 「히틀러」가 누굴 가리키는가는 불문가지의 일. 이번 선거에서 「드골」의 여당과 맞서 싸우려는 야당들의 공통된 선거구호라는 설명이다.
4백87명의 하원의석 전부를 개선하는 이번 총선 에서 출마자는 무려 2천2백60명의 난립상. 내리 9년째 스스로를 「프랑스」의 영광이라 자칭, 이번에도 다수 의석을 주지 않으면 국가운명이 위태롭다고 호통치고있는 것은 콧대높은 「드골」과 그가 영도하는 집권당은 당명조차 「드골」파 신공화당(UNR/UDT). 이에 맞서서 밀접한 연합전선을 펴가면서 「드골」타도에 나선 것이 공산당, 좌파사회당(FGES) 및 민주당(CD)등 세 주요야당과 그 밖의 군소 정당들.
평소 정치운동에는 초연한 것 같던 「드골」도 이번엔 약간 초조의 빛. 그가 직접 TV에 나가 사전 선거연설을 했다는 비난이 물 끓듯 하는가하면, 각료들은 그들대로 매일 밤 6시 이후 공군기에 탑승, 지방선거유세에 나서 또 한바탕 소동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선전의 귀재로 이름높은 야당(민주당)의 선전부장「봉그랑」씨를 집권당이 약 4백20만「달러」의 거액으로 매수해갔다는 얘기. 참새떼 「파리장」들이 떠들썩한 것도 당연하다.
유권자대중의 성숙도는 공무원의 내정만 빼놓으면 이 모든 선거풍경들은 어쩜 그렇게도 그 어느 나라와 닮을 수 있는 것인지 오히려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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