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번 주자 - 박경리 여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박경리 여사는 꼬박 5개월을 쉬었다. 가으내 겨우내 그는 도무지 붓을 들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그랬어요. 창작생활을 하자면 의지도 중요하지만 체력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박 여사는 요즘 퍽 건강해졌다. 붓을 들면 언제나 병색마저 띠어 보이는 그의 얼굴엔 처절한 인고의 빛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쓴다는 것은 병적인 「무드」없이는 절실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단편 「계산」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그는 불과 10년 동안에 15권의 장편과 70편의 단편을 발표했다. 그의 왕성한 창작욕에 부채질이라도 하려는 듯이 「신인문학상」(현대문학)·「내성문학상」.「여류문학상」이 수여되곤 했다. 「김 약국의 딸들」·「전장과 시장」은 장기 「베스트·셀러」.
『저에겐 시간이 그냥 덩어리로 주어졌던 것이지요. 그 시간에 저는 썼을 뿐입니다.』 박 여사는 평소에 문단의 사교에도 둔감한 편이며, 생활도 번화하지 않았다. 그의 말마따나 「문학」이라는 『절망의 길을 빠득빠득 걸어』가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언젠가 『인생은 나에게서 더 먼 것 같고, 문학의 작업장은 더 가깝다』는 말을 한 일이 있다. 그만큼 문학에의 열애는 강인하고 깊은 것이었다. 요즘에서 박 여사는 쉬었던 의식의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는 새로운 가능성에의 기대로 부풀고 있었다. 『일생동안 못다 쓸 만큼 소재는 많이 있다』는 박 여사이기도 했다. 요는 문학적 밀도가 문제이다. 그는 중편집필을 앞두고 새삼 그것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문득 평론가들에게 의해 자주 지적되는 작품의 문제성에 관해 한 마디 한다. 『어째 정치·사회문제를 다루어야만 문제의 작품인가? 예술로서의 완성은 그 속에 왜 포함될 수 없는가?』-그는 한 마디로 『진정한 듯에서 정치소설이 있느냐?』고 반문하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파고드는 소재분야에 속하는 일이며 어떤 필연적인 사명일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중편이나 장편이지요. 독자를 정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쓴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학대에 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주는 희열이 있으니까요.』 「미래」를 묻는 말을 박 여사는 그렇게 대답했다. <율>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