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10화(끝) - 이동 극장|이해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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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나는 도시에 집중된 문화를 지방으로 소개하여 보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이동극장 운동을 시작하였다. 사실 도시인은 각가지 문화시설에 포식을 하고 입이 짧아져서 반찬 투정만 하고 있는 반면에 농어촌민들은 문화의 끼니를 채우지 못하고 굶주리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동극장이 가는 곳마다 그렇게 농어촌민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횟수를 거듭하여 정기적으로 그들을 찾아 위문을 하였을 때 비로소 그들은 이동극장의 진의를 알고 우리를 환영하여 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농어촌민들의 인식의 속도는 빨랐다. 마치 쓰지 않은 생안손이 예민하듯이 생전 연극을 보지 못한 그들이 연극을 받아들이는 감수성도 도시인에 못지 않게 예민하였다. 극단원들은 그들이 연극을 잘 먹어 주는데 쾌감을 느끼고 하루 2회씩 이동을 하여 공연을 하는 벅찬 피로도 잊고 공연 때마다 열연을 하였다.
공연 중에는 수많은 관객이 모였어도 조용하니까 모르겠으나 공연이 끝난 후 관객이 흩어질 때에 그 엄청난 인파에 놀라 나는 혀를 내휘두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숫자의 추산만은 언제고 신문사의 견해를 따라서 통계를 내었다.
경기도 광주에서 낮 공연을 마치고 용인으로 가는 도중에 「버스,」가 사고를 일으켜 7시 공연 예정인 장소에 거진 자정이 되어서 도착했다. 공연 시간까지는 한 3만명이 모여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하였을 때는 그 반수는 돌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 필자의 눈으로는 운동장과 「스탠드」를 메운 관객이 그대로 3만명이 되는 것 같이 보였다.
면 소재지 우시장에서 낮 공연을 마치고 관객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우리는 밤 공연을 하는 다음 장소에 대가기 위해 부리나케 「버스」 앞에 버티었던 무대를 정리하고 있는데 연극을 한번 다시 하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삼십리 밖 집단 부락에서 2백여 명이 모여왔는데 공연시간에 늦게 대와서 모두 연극 끄트머리밖에 못 보았으니 처음부터 다시 하여 달라는 것이다.
한 장소라도 어긋나는 날이면 그 달 한 달 동안을 연이어 짜놓은 「스케줄」이 엉망이 되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끝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는 그 부락민들을 뒤로 두고 떠나는 때엔 우리 극단원들은 「체호프」 작품의 대단원과 같은 「페이소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천변가에서 연극을 하였을 때 한 영감님이 무대 뒤로 찾아와 피부병에 잘 낫는 약을 팔아 달라고 졸라대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무대 뒤로 찾아온 한 청년이 단장을 찾길래 필자가 만났더니, 실컷 서로 이야기를 한끝에 그 청년은 『이해랑 여단장은 안 오셨어요』하고 묻는 일도 있었다. 대관령 마루 턱 주막에서 잠시 「버스」를 멈추고 도토리 술을 마실 때의 그 감미로운 맛 등 잊을 수 없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예총 회장·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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