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으로 손을 내미는 금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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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 사는 A씨는 이달 21일 석전동 경남은행 본점에서 열린 ‘서민금융상담 대행사’를 찾았다. 사금융에서 연 20%가 넘는 고금리 대출을 받은 이후 생계에 곤란을 겪고 있던 그는 은행 직원들과 상담을 통해 새희망홀씨대출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신용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은행권의 새희망홀씨대출은 금리가 연 11~14%다. A씨는 “이제 고금리 대출을 정리할 수 있게 돼 시름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

  금융이 달라지고 있다. 혹독한 불경기 속에 금융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서민과 취약계층을 향해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금융 서비스가 많아지고 있다. 금융이 비올 때 우산을 뺏던 모습에서 선뜻 우산을 빌려주는 ‘친구 같은 금융’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이듯이 필요한 자금을 구하지 못해 막막할때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는 금융이 진짜 금융이다.

  변화의 선두에는 금융회사들의 사령탑인 지주회사들이 있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고객과 사회로부터 진정한 신뢰를 받으려면 사회적 책임도 적극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따뜻한 금융은 단순히 대외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한금융그룹의 존재 이유”라고 선언했다.

  금융권에서 자원봉사 같은 사회공헌활동은 기본이 됐다. 이제는 이자를 받고 자금을 빌려주는 금융 본업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저신용·저소득 계층에게 대출 금리를 낮춰주고, 예금 금리를 높여주는 상품이 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11월 시작한 새희망홀씨 대출의 경우 지난해만 45.6%가 늘어나 모두 40만여명에게 3조6000억원이 대출됐다. 이들은 이 돈으로 20~30%의 고금리 대출을 갚아 이자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었다. 은행들은 새희망홀씨를 이용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을 위한 10%대 금리의 신용대출상품을 개발하는 한편 채무를 장기간 나눠 변제할수 있게 하는 프리워크아웃 제도를 운영중이다. 취약계층에 연 7.5%를 주는 적금( KB국민행복적금)도 등장했다. 중소기업 대출도 늘린다. 은행들은 일찌감치 올해 중소기업 대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4.8% 많은 30조8000억원으로 늘려잡았다. 신용평가수수료 등 중소기업 대출 수수료 7종도 없앴다. 일자리에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계약직 텔러를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신한은행, 대구은행 등), 기간제 계약직을 사실상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으로 바꾸는 사례(IBK기업은행 등)가 잇따르고 있다. 청년 일자리 문제 해소를 위해 청년 구직자와 중소기업을 연결시켜주는 은행들도 많아졌다.

  보험·증권·카드 등 제2금융권도 취약계층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삼성화재 등 보험사는 아예 올해 보험료를 동결키로 결정했다. 계속되는 저금리 때문에 보험료 인상 압박이 심했지만 서민들의 보험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인상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NH농협생명은 대출금리 상한제를 실시하고 있다. BC카드는 취약계층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충전한 스쿨카드를 지급한다. 하나대투증권은 투자 고객이 지정한 곳에 수수료 일부를 기부하는 서비스를 전개하고 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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