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감사원장 교체는 헌법정신에 어긋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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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기가 2년쯤 남은 양건 감사원장을 두고 교체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진원지는 청와대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교체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라는 익명의 목소리들이 교체 분위기를 잡아 가고 있다.

 그런데 감사원장이 어떤 자리인가. 독립된 헌법기관의 수장 아닌가. 임기(4년)도 헌법에 규정돼 있다. 감사의 독립성·중립성·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그런 감사원장을 은행장이나 공기업 사장 갈아치우듯 하겠다는 건 대단히 잘못된 발상이다. 일각에선 경찰청장도 임기 전에 교체했으니 감사원장도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감사원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다.

 헌법에 임기가 명문화돼 있는 감사원장을 대통령이 임기 중 덜컥 교체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청와대도 본인의 자진 사퇴를 바라며 외곽 때리기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2007년 연임한 전윤철 전 감사원장이 이듬해 이명박 정부 초 자진 사퇴했을 때도 외압설이 무성했다. 이런 선례가 되풀이된다면 감사원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이치다. 그렇게 새로 낙점된 감사원장이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부정부패를 감시할 수 있겠는가. 권력의 애완견 노릇이나 하면서 집안 족보에 이름 한 줄 남기는 것 외에 뭘 하겠나 하는 비아냥마저 나온다. 이는 감사원장 개인의 신상 문제가 결코 아니다. 헌법기관의 위상과 기능에 대한 중대 도전이다.

 2011년 2월 양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해 야권이 회전문 인사라고 비난했을 때다. 당시 한나라당은 “공직 기강 강화와 공정사회 구현에 부합하는 인물”이라는 논평을 내놨다. 같은 정권에서 2년 만에 다른 소리를 하면 국민이 납득하겠나. 교체가 대통령의 의지라면 보좌진이 헌법 정신을 설명하며 그 뜻을 접도록 설득해야 한다. 반대로 대통령에게 그런 생각을 입력시킨 이가 있다면, 국정 농단 세력으로 간주해 솎아내야 한다. 정부 출범 초부터 잡음 범벅이 된 인사에서 또 하나의 패착이 나오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