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캐다 나온 정계 비리, 특검·검찰 누가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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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13년 말, 특별감찰관의 고발을 받아 지방의 유력 정치인 A씨의 수뢰 사건을 수사하던 상설특검은 암초에 부딪혔다. 인허가 청탁을 부탁하며 A씨에게 돈을 건넨 B건설사에 대한 핵심 자료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자료는 이미 해당 지역 검찰청 특수부가 압수수색을 통해 쓸어간 상태였다. 특검은 자료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B사 대표의 횡령 혐의를 수사해온 검찰은 추가 수사와 공소유지를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상황이 어렵기는 검찰도 마찬가지였다. 횡령액 가운데 상당 부분이 A씨에게 흘러간 사실을 확인했으나 정작 A씨에 대한 수사를 할 수 없었다. 결국 검찰은 이 금액을 공소사실에서 뺄 수밖에 없었다.

 상설특검이 도입된 이후 특검과 검찰 수사가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을 가상한 시나리오다. 17일 여야가 합의한 만큼 특별감찰관과 상설특검제 도입은 기정사실이 됐다. 현재로선 대통령 친인척과 정치인·판검사 등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는 상설특검이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상설특검 도입을 주장했던 측은 대통령과 여당을 의식했던 검찰에 비해 보다 엄격한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정치인·고위 공직자 비리 척결이 상설특검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에 이를 소홀히 했다간 존재의 근거가 사라진다. 죽기살기로 덤빌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세부 사항은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다는 것이다. 자칫 일선 현장에선 혼란과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갈등의 씨앗은 수사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검 특수부장과 대검 중수부 과장 등을 역임한 문영호 변호사는 “정치인 비리도 대부분 출발은 경제 사건에서 시작하는데 수사 도중에 정치인이 나오면 무조건 넘겨줘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까지 11차례 임명된 한시적 특검이 대부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놓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수사 범위가 한정돼 중간에 나오는 의혹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검과 특별감찰관의 조직과 규모도 논란거리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는 “상설특검은 자체 수사인력을 두고 특별감찰관이 조사하는 범죄나 비위 사실 외에 인지수사 기능도 가져야 한다”며 “지청 단위의 검찰청이 하나 더 생기는 수준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면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 특수부 검사는 “대형 비리사건 수사는 검찰의 여러 경로를 통해 수집된 정보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며 “검찰이 범죄 정보를 특검에 넘길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 현실에서 특검 수사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특검이 제 역할을 하려면 검찰이 정보와 인력을 특검에 수시로 제공하는 등 많이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중수부 폐지 등으로 예민해진 검찰에 이런 협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다. 그보다는 검찰과 상설특검 사이에 실적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상설특검의 정치적 독립 문제도 해결해야 될 문제다. 법무부 관계자는 “상설특검이나 특별감찰관 역시 국회나 대한변협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할 가능성이 크다”며 “다음 자리를 염두에 두는 사람이 올 경우 임명권자의 눈치를 검찰보다 더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현철·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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