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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 막았더니 금피아 금피아 막았더니 감사원…금융권 감사 자리, 그리 달콤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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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골목길 불법 주차의 나쁜 기억. 어디 하루 이틀, 한두 사람 얘기랴. 내가 사는 곳, 북한산 자락 골목 끝 어귀에도 10m 길이 ‘난코스’가 있다. 40도쯤 되는 경사를 90도쯤 가파르게 왼쪽으로 꺾어 올라야 한다. 난코스라곤 했지만 차 두 대가 다닐 넉넉한 공간이라 사실 초보 운전자도 문제없이 다닐 수 있다. 단 불법 주차 차량만 없다면. 그러나 불법 주차 차량 한 대만 있어도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맞은편에서 차가 내려오면 뒤엉켜 꼼짝 못하기 일쑤다. 눈 많았던 이번 겨울엔 더 애를 먹었다.

 주민들이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주차금지 푯말도 세우고 차 주인을 수소문해 경고도 했다. 10여 년 전 반상회가 있던 시절엔 ‘조직적 대처’도 했다. 당시 주민 대표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놔두면 절대 안 됩니다. 다른 차들까지 가담해서 골목이 아예 주차장이 돼 버릴 겁니다.” 아, 이게 바로 ‘깨진 유리창의 법칙’, 사소한 잘못을 방치하면 더 큰 범죄로 확산한다는 그 유명한 이론 아니던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주민들이 순번을 정해 구청에 단속을 요구하는 강수까지 뒀지만 소용없었다. 상습 불법 주차자에게 딱지를 뗐더니, 다른 차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금융회사 낙하산 감사의 나쁜 기억, 역시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상황도 골목길 불법 주차와 꼭 닮았다. 처음엔 모피아(재무부+마피아)가 금융권 감사를 독차지했다. 감사 자리는 연봉 수억원대에 연임도 가능하다. 노후 보장으로 안성맞춤이라 노리는 이가 많다. 그런 자리를 독식했으니 주변 시샘을 사 탈이 나게 마련이다. 여론 화살을 맞은 모피아가 떠나자 금피아(금융감독원+마피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자 이번엔 금피아 독식이 도마에 올랐다. 금감원 퇴직자 절반 이상이 금융회사 감사로 가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그럴 만했다. 금피아 낙하산 문제는 국정감사 단골 메뉴가 됐다. 결국 금감원은 2011년, 퇴직자의 금융권 감사 취업을 차단해야 했다.

 금피아 떠난 자리는 누가 차지했을까. 감사원이다. 지난 2년 새 감사원 퇴직자 23명 중 12명이 금융회사 감사로 재취업했다고 한다. 국정감사 단골 메뉴도 금피아에서 감사원 낙하산으로 바뀐 지 몇 년째다. 필자가 금피아란 조어를 처음 칼럼에 쓴 2009년, 금피아 중 한 사람이 말한 그대로다. 그는 당시 “감사원 좋은 일만 시킬 거다”라고 했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상근 감사 자리를 아예 없앴다. 감사원과 금감원 낙하산 사이에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운 격이다. 상근 감사 자리야 백번 양보해 없앨 수 있다 치자. 골목길 불법 주차는 어쩌랴. 불법 주차 막자고 골목길을 없앨 수는 없잖은가.

글=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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