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서 6억원 지급하라"

중앙일보

입력

1998년에 터진 '북풍 사건'의 핵심인물인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 공작원 '흑금성'을 고용했다가 피해를 본 대북사업가가 국가로부터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서울고법 민사항소5부(재판장 梁東冠부장판사)는 지난 21일 (주)아자커뮤니케이션 전 대표 박기영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6억5천만원을 지급하고 화해하라"는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흑금성은 안기부가 90년대 초 아자측에 전무로 위장취업시킨 박채서(49)씨의 암호명으로, 안기부는 그를 통해 대북사업과 관련한 공작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해 결정은 양측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판결과 같은 효과가 있다. 따라서 법원의 이번 결정은 안기부의 공작으로 민간사업가가 피해를 본 사실을 인정한 것이 된다.

아자측은 97년부터 북한의 금강산.백두산.개성 등을 배경으로 안성기씨 등 남한의 인기배우와 북한의 인기가수 등이 함께 출연하는 TV광고를 찍는 프로젝트를 추진했었다.북한의 유도선수 계순희를 모델로 한 광고도 계획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흑금성 朴씨는 북한 고위관계자들과 만나 사업을 성사시키는 핵심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98년 3월 안기부 전 해외실장 이대성씨가 국내 정치인과 북한 고위층 인사 간의 접촉내용을 담은 기밀정보를 폭로하면서 이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

폭로 내용은 97년 대선 당시 북한 관련 정보가 어떻게 선거와 정치에 이용됐는지를 드러내는 것으로,안기부가 대북정보를 입수한 방법 등이 상세히 담긴 국가 1급비밀이었다.

당시 '이대성 파일'로 불린 문건에서 흑금성의 활동내용이 낱낱이 공개되고, 그 주인공이 朴씨임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아자측의 대북사업은 북측의 반발로 전면 중단됐다.

아자측은 "이 책임이 흑금성을 위장 취업시킨 안기부에 있다"며 98년 손해배상금 78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2000년 5월 1심에서는 "안기부가 고의로 사업에 피해를 끼치려 한 것은 아니다"는 이유로 패소했었다. 아자측은 이날 법원의 결정에 대해 "긍정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현경 기자goodj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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