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이탈리아 성인 프란치스코의 초상. [중앙포토]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가톨릭에서 가장 애송되는 기도 중 하나인 ‘평화의 기도’다. 이탈리아의 수호 성인인 프란치스코(1182∼1226)가 지은 시다. 프란치스코는 라틴어로 쓰인 성경을 서민들이 읽을 수 없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고향 아시시 지역의 방언으로 ‘평화의 기도’를 썼다. 그만큼 ‘애민정신’이 각별했던 수도자였다.

 성인 프란치스코는 가톨릭계의 수퍼 스타다. 중세교회의 개혁자이자 청빈과 순결, 순명의 대명사로 인식돼왔다. 때문에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일본의 저술가 시오노 나나미는 프란치스코를 14세기 르네상스보다 200년 먼저 변화의 씨앗을 심은 ‘최초의 르네상스인’으로 평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어서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내전에 참가해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후 마음을 돌린다. 상속권을 포기하고 ‘영혼이 가난한’ 수도자의 길로 들어서 평생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다.

  그가 일으킨 교회 개혁의 파장은 컸다. 1209년 초기 형태의 수도회가 시작된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는 불과 10년 뒤 5000명 규모로 불어났다. 1223년 정식 수도회 인준을 받았고,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카푸친 작은 형제회 등 영성적 지향이 같은 가족수도회들이 생겨났다.

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