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진짜 사각지대는 따로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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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규연
논설위원

‘지금 촬영 중’.

 경북 경산역 부근의 Q중학 담벼락, 검은색 CCTV 카메라 앞에 붙어 있는 안내문이다. ‘지켜보고 있어, 딴짓 하지마’. 지나는 학생들에게 으름장을 놓는 듯하다. 동료 학생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잘못된 선택을 한 A군이 다녔던 학교다. 담을 따라 한 바퀴 도는 데 5 분도 안 걸릴 정도로 아담하다. 운동장과 담 주변에는 10여 대의 카메라가 배치돼 있다. 엉뚱한 곳에 설치했다는 일부 보도와 달리 대부분 구석진 곳에 적절히 자리잡고 있다.

 “이 정도 CCTV로는 어림도 없었어.”

 담을 돌다 마주친 학교 관계자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건물 외곽의 사각지대를 막으려면 최소 50대는 필요해 보인다. 건물 안의 교실·복도·화장실 등을 빠짐없이 감시하려면 추가로 50대쯤은 더 있어야 한다. 맞다. 지금의 카메라로는 학생들의 딴짓을 모두 렌즈에 담을 수 없는 게 맞다.

 ‘CCTV 없는 데나 화질이 안 좋아 판별하기 어려운 데서 맞았다’. A군의 유서가 공개되면서 CCTV가 죄인이 됐다. ‘무용지물’ ‘먹통’ 등의 기사가 쏟아진다. 학교와 교육당국의 손가락도 감시카메라를 가리킨다. 2011년 대구의 중학생이 투신한 비극을 계기로 전국 학교에서는 CCTV 증설 작전이 진행 중이다. 이미 10만 대가 설치됐다. Q중학 사례를 전국 초·중·고 1만여 곳에 단순하게 적용해보자. 카메라의 사각지대를 없애려면 학교당 100대, 모두 100만 대쯤 설치해야 한다.

 ‘명랑, 밝음, 활동적…’.

 A군이 지목한 가해 동료들의 학생기록부 내용이다. 학교 보직자는 이를 내세우며 “가해 학생들은 착했고, 학교는 폭력의 기미를 눈치챌 수 없었다”고 현장 기자들에게 설명한다. 실제로 지난해 이 학교의 학교폭력심의회는 한 차례 열렸다고 한다. 서류로는 평화학교다. 어찌된 일인가. 경찰이 수사를 착수한 지 하루 만에 유서 내용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수사팀은 “다른 사례까지 제기돼 수사를 확대 중”이라고 했다. ‘일진’ 같은 무리가 있어서 학생들을 괴롭혔다는 것이다. 교육부 장관이 ‘모범기관’인 이 학교에 와 TV프로그램을 찍을 때도 A군이 괴롭힘을 당했다는 뉴스는 슬픈 코미디다.

 달을 보라 하니 손가락만 본다고 할까. 어린 학생이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CCTV의 무관심이 아니라 학교·교사의 무관심이다. 카메라가 아니라 어른들의 눈이 문제다. 렌즈의 사각지대가 아니라 사회의 사각지대를 말하고 싶었으리라.

 우리 눈에는 맹점(盲點)이 있다. 시세포가 없어 물체의 상이 맺히지 않는 부분이다. ‘blind spot(사각지대)’이다. 인간의 사고에도 맹점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패턴적 사고를 할 때 맹점이 자주 드러난다고 한다. 유형을 정해놓고 일을 쉽게 처리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만다는 것이다. 극복법은, 실천하기 어렵지만, 간단하다. 자기를 진단하고 남과 소통하는 것이다. 엉뚱한 얘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마음의 사각지대가 확인된다.

 학교폭력의 맹점을 줄이려면 교육주체가 이런 극복법을 써야 한다. 특히 학생과 학생, 학생과 학부모를 연결하는 교사·학교의 역할이 기계적·전시적이면 CCTV를 100만 대, 1000만 대 설치한들 사각지대는 남는다. 학급을 찬찬히 진단하고 학생들과 ‘질문과 답변(Q&A)’을 자주 해야 한다. 카메라 보완은 그 다음, 다음쯤이다.

 “(A군은) 덩치가 큰데도 맨 앞줄에 앉아 선생님을 쳐다봤어요.”

 학교 친구의 회상이다. Q중학 부근에는 다른 고교가 있다. 저녁이 되자 학생들이 거리로 몰려나온다. 한 무리가 보인다. 학생이 다른 학생의 어깨를 건드린다. 혼자 걷는 학생도 보인다. 축 처진 어깨다. 모두는 ‘학교폭력 없는 우리 학교’ 현수막을 거쳐 CCTV 앞을 지나친다. 카메라는 그들을 지켜보는 걸까.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