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뉴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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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도시의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하지 않는다.
으슥한 벽장 허름한 헛간도, 뒷마당 뒤안길의 수풀도 없다.
아무리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라고 외쳐봐도
아스팔트처럼 어디를 가나 훤히 뚫린 현대의 공간에서는
숨을 데가 없다.

수천억원이 빠져나간 은행계좌가 있고
공직자의 전화 목소리가 적힌 자료가 있고
실력자의 측근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이 있고
공금이 엉뚱한 곳으로 샌 장부가 있고
아무리 꼭꼭 숨어도 발자국투성인데
감사원도 있고, 금감원도 있고, 검찰이 있는데
오늘도 심심한 숨바꼭질 놀이가 되풀이된다.

지금은 정보시대, 모든 것이 투명하다는 세상
옛날 아이들처럼 숨바꼭질을 할 수 없는 세상
그런데도 어디에선가
철모르는 아이들이 외쳐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 현대상선의 4천억원 대북 지원, 국정원의 도청.감청, 공적자금 비리 등의 의혹 사건이 여전히 수수께끼다. 감사원과 검찰은 24일 본격 조사에 나선다고 했지만 이젠 말보다 행동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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