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군부, 김정일 유훈 내세워 당·내각의 온건파 제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강경파로 분류되는 군 지도부와 함께 531부대 예술선전대 공연을 관람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13일자에 전했다. 왼쪽부터 현철해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최용해 군 총정치국장, 김정은 위원장, 현영철 군 총참모장. [사진 노동신문]

북한의 3차 핵실험(2월12일)을 앞두고 올 초 북한 권력 핵심부에서 강·온파 간 갈등이 극심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들은 3차 핵실험 전 당은 온건론을, 군부는 강경론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강경파의 손을 들어줬다고 13일 전했다.

온건파의 핵심은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지목됐다. 그는 당 정치국 위원이자 행정부장을 겸하고 있다. 그의 부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 외무성 제1부상을 지낸 강석주 당 정치국 위원 겸 내각 부총리 등도 핵실험 유보론에 동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택은 중국과의 관계를 내세워 핵실험 유보론을 폈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8월 중국을 방문해 북·중 경제협력 등을 논의했을 만큼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해온 인물이다. 특히 중국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황금평과 위화도 개발을 성공시켜야 하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그런 만큼 북·중 관계를 고려해 핵실험 유보론을 펴며 만류했다는 게 대북 소식통의 전언이다.

 반면 핵실험 강행론자로는 최용해 군 총정치국장을 비롯해 현영철 인민군 총참모장, 김영철 정찰총국장 등이 꼽힌다. 이들은 지난해 12월12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북한은 위성이라고 주장) 발사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킨 데 강한 반감을 표시하면서 핵실험 강행을 외쳤다고 한다.

 핵실험을 둘러싼 북한 권력 내부의 논쟁에서 군부가 승리했다는 것은 역으로 김정은이 군부 강경파에 휘둘리고 있다는 반증이란 분석을 낳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 내부의 권력다툼이 미사일(장거리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을 앞당기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군부의 이 같은 강경한 노선은 결과적으로 북한 체제 안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체제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를 위시한 중국의 새 지도부가 중국의 핵실험 반대 설득을 묵살하고 핵실험 도발을 감행한 북한에 대해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실제로 중국은 이전보다 강도가 높아진 경제제재와 대북 물자 통제 등을 담은 유엔 안보리 2094호 결의안에 찬성했다.

 대북 소식통은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매우 싸늘해졌다”며 “북·중 관계가 벌어진 것은 북한 군부 강경파의 핵실험이 부른 자업자득”이라고 말했다.

 북한 권력 내부의 강경파와 온건파 간 다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상반기에도 당과 내각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와 군부 강경파의 긴장 국면이 조성됐던 적이 있다. 당시는 김정은이 군부가 장악해온 외화벌이 사업을 회수해 내각으로 이관을 추진했는데, 이를 당이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선군(先軍)에서 선경(先經)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계기가 됐고 농민의 토지 사용권 확대, 농민의 잉여생산물 판매권 인정 등을 담은 ‘6·28방침’이 마련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 여파로 7월 초 당시 군부의 핵심 실세였던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겸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갑자기 해임되면서 군부의 영향력이 위축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반기 들어선 정찰총국의 주도권 다툼을 놓고 총격전이 벌어지고 김정은 위해 시도가 이어져 군부의 위상이 추락했다.

 이런 과정에서 군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내세워 장거리 로켓 발사를 성공시켜 입지를 회복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2087호 제재 결의안을 빌미로 3차 핵실험까지 내달린 것으로 북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지수 명지대(북한학) 교수는 “김정은이 후계자가 된 이후 군부를 포함한 실질적 권력까지 계승했는지는 의문”이라며 “김정은 정권 들어 당과 군에서 권력 다툼이 치열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집권 초 권력다툼에서 강경파의 입지가 약했지만 나중에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공세적인 군사정책들이 추진됐다”고 말했다.

장세정·정원엽 기자

◆ 3차 핵실험에 대한 당 온건파와 군 강경파

▶온건파

- 장성택 김경희 강석주

- 핵실험 협상 카드로 활용

- 중국의 안보리 결의안 찬성. 온건파 우려가 현실화

▶강경파

- 최용해 현영철 김영철

- 핵실험 강행해 한·미 압박

- 국제적 고립. 김정은에 부담 안겨

[관계기사]

▶ 北 김정은, 장성택 만류에도 핵실험 강행
▶ "적들 명줄 끊어라" 김정은, 섬뜩한 악담 왜
▶ [단독] 작년 평양서 김정은 제거 시도 있었다
▶ '북한을 조준하라!' K-55 자주포 이용 도발 대비 훈련
▶ "北, 고된 훈련·식량난으로 탈영병 7배 급증"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