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조로 예상한 용산사업, 오세훈이 판 키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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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시행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가 13일 채무 불이행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다. 사진은 서울 용산 개발지구. [김도훈 기자]

시작은 순탄했다. 2006년 8월 코레일은 용산철도정비창 부지(44만2000㎡) 개발을 계획했다. 고속철도 부채 4조5000억원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 부지는 서울시가 2001년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기 위해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예상 사업비는 26조원 정도였다.

 판이 커진 것은 2007년 8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나서면서다. 오 전 시장이 당시 추진 중이던 한강변 개발사업인 ‘한강르네상스’와 연계개발을 제안한 것이다. 서부이촌동(12만4000㎡)을 포함한 통합개발안이 나왔고 추정 사업비가 단숨에 31조원으로 불어났다. 서부이촌동 주민(2200여 가구)과 갈등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나라 땅인 용산철도정비창 부지와 다르게 서부이촌동은 민간 사유지다. 대부분의 주민이 개발에 반대하고 나섰다. 현재까지 보상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드림허브 관계자는 “서울시는 한강변 개발에 따른 주민보상 문제를 연계개발로 풀어보려 했던 것 같은데, 이게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에는 아킬레스건이 됐다”고 말했다.

 통합개발안이 나온 후 2007년 12월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개발사업자로 선정됐다. 이때까지 코레일과 29개 민간 출자사는 장밋빛 청사진을 그렸다. 내로라하는 국내외 건설·금융사가 서로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2008년 불거진 세계 금융위기로 부동산시장이 침체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부동산값 하락으로 사업성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이때부터 사업비 마련 방식을 두고 30개 출자사 간 자중지란이 시작됐다. 삼성물산 등 17개 건설 출자사의 지급보증으로 사업비를 마련하려 했지만 건설 출자사의 거부로 무산됐다. 건설 출자사는 지급보증은 자신들의 위험 부담이 커지니 전체 출자사가 위험을 나누는 유상증자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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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해외 투자자본 유치, 1500억원 전환사채(CB) 발행 등으로 사업이 정상화되는 듯 보였지만 또다시 사업성이 발목을 잡았다. 돈줄을 쥔 코레일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업성이 없으니 돈이 되는 철도정비창부터 개발하는 단계적 개발을 주장하면서 선매입한 랜드마크빌딩 2차 계약금 4100억원을 주지 않았다. 이에 민간 출자사들은 당초 계획대로 서부이촌동을 통합개발하자며 코레일에 맞서 양측의 감정의 골만 깊어졌다. 최근 민간 출자사들은 “코레일의 요구에 따르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결국 자금 마련에 실패했다.

 이제 동북아의 관광허브를 꿈꾸며 야심 차게 추진돼 온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의 기본 구도는 깨졌고, 그나마 정상화 방안의 키는 코레일이 잡고 있다. 이와 관련해 코레일은 13일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정상화하더라도 지금까지 추진했던 서부이촌동과의 통합개발 방식은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코레일이 채무를 모두 떠안은 뒤 공영개발할 가능성도 있다. 드림허브 관계자는 “사업을 정상화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코레일이 지분 50% 이상을 갖고 추진하는 공영개발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개발사업에 출자한 건설사 관계자는 “난마처럼 얽혀 있는 투자자들 간의 이해관계가 정리되지 않는 한 공영개발도 시작하기 어렵다”고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이 사업이 무산되면 대규모 공모형 프로젝트파이낸싱 개발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고, 전체 부동산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글=최현주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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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개발 백지화되면 30개 출자사 1조원 다 날릴 듯
▶ 파산 절차 밟으면 피해액 수조원대 이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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