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265번째 후계자는 누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을 새 교황(초대 교황 베드로 이후 제266대 교황) 선출이 12일 시작된다. 투표권을 가진 117명의 전 세계 추기경 중 불참 의사를 밝힌 2명을 제외한 115명은 이미 지난 8일 이탈리아 로마의 바티칸 교황청에 모두 모였다. 평온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물밑에서의 선거전은 치열하다.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회의는 라틴어로 ‘콘클라베’라 불린다. ‘열쇠로 잠근다’는 뜻이다. 새 교황이 뽑힐 때까지 교황청 성 베드로 대성당의 시스티나 예배당 문을 걸어 잠그고 취침 시간만 빼곤 줄곧 투표를 진행한다는 의미다.

 자천 또는 타천의 교황 후보는 없다. 투표에 참여하는 115명의 추기경이 모두 후보다. 원칙적으로는 추기경이 아닌 모든 사제도 후보다. 추기경들은 투표를 거듭하면서 유력 후보에게 표를 집중하는 방식으로 뜻을 모아간다. 회의 참여자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어야 교황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회의에선 77표 이상이 필요하다. 추기경들은 12일 저녁(현지시간) 첫 투표를 실시한다. 다음 날부터는 오전과 오후에 각각 두 차례씩 투표를 할 수 있다. 1978년 요한 바오로 2세 선출 때는 사흘 만에 투표가 끝났다. 2005년 베네딕토 16세 선출 때는 이틀이 걸렸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외신들은 이번 콘클라베 시작 뒤 하루 이틀 안에 시스티나 예배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흰 연기는 새 교황이 뽑혔음을 알리는 최초의 신호다. 미국의 도널드 우얼 추기경은 이탈리아의 신문 라스탐파에 “이번 콘클라베는 짧지 않을 것이다. 3~4일이 걸린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교황 선출에 진통이 예상되는 가장 큰 이유는 뚜렷이 두각을 나타내는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회의에선 보수파와 진보파의 대립까지 예상되고 있다.

 새 교황은 전임자와 대비되는 성향을 가진 인물인 경우가 많다. 흔히 ‘진자의 법칙’이라 불린다. 추가 좌우로 한 번씩 움직인다는 뜻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엄격한 신앙을 강조하고 교황청 개혁에는 비교적 소극적인, 보수적 성향이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새 교황으로는 개방적인 종교관과 종단의 개혁을 지향하는 진보적 인물이 등극할 가능성이 크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레푸브리카는 8일까지 열린 추기경 총회에서 이탈리아 추기경들과 미국 추기경들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전했다. 28명의 이탈리아 추기경은 보수적인 색채가 강하고, 11명의 미국 추기경은 대체로 진보적 성향을 띤다. 30년 동안 교황청을 연구하며 『바티칸 일기』라는 책을 펴낸 미국인 존 태비스는 언론에 “이탈리아 추기경들은 브라질의 오질루 셰레르 추기경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셰레르 추기경은 통상 중도 보수파로 분류된다. 미국의 ABC방송은 “미국 추기경들은 산적한 문제를 청소할 참신한 인물을 기대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인 교황의 탄생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수적 성향의 추기경 중 유력 후보로 떠오른 인물은 셰레르 추기경을 비롯해 안젤로 스콜라(이탈리아) 추기경과 피터 턱슨(가나) 추기경 등이 있다. 밀라노 대주교인 스콜라 추기경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종교인이다. 그는 사제들의 성 추문을 지적하는 언론을 향해 “교황에 굴욕감을 안기려는 공격을 삼가라”고 비판했다. 턱슨 추기경은 보수파로 분류되지만 피임기구 사용에 비교적 관대한 입장을 보이는 등 사회문제에는 유연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가 선출되면 1500여 년만의 아프리카 출신 교황이 된다.

 진보 성향의 인사 중에는 크리스토프 쇤보른(오스트리아), 오스카 로드리게스 마라디아가(온두라스) 추기경 등이 유력 후보로 조명받고 있다. 쇤보른 추기경은 성직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성애자를 교구회에서 활동하도록 허용하면서 언론에 널리 알려졌다. 로드리게스 마라디아가 추기경은 교회가 사회적 약자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해왔다.

이상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