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은행제 인정 기관 대학 둔갑해 학위 장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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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PD의 꿈을 키워온 정모(23)씨는 지난 3년간 학비 수천만원을 날렸다. 정씨는 서울 서대문구 소재 H평생교육원을 다니다 지난해 자퇴했다. 이 시설은 ‘전문 방송인을 양성하는 전문 대학’이라고 선전했다. 교육원이 추천한 대로 일정 과목을 듣고 학점을 이수하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주는 학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2010년 초 등록을 망설이던 정씨에게 교육원 측은 4년제 대학과 똑같은 예술학사 학위와 방송계 취업을 장담했다. 정씨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매학기 4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냈다. 하지만 2011년 말부터 편법 수업이 벌어졌다. 이 시설은 정부로부터 그해 12월과 지난해 9월 운영 경고를 받았다. 그후 학점으로 공식 인정되는 과목이 줄자 학생들을 같은 법인 소유의 학원으로 돌려 수업을 듣게 했다. 해당 학원은 인가조차 받지 않은 시설이었다. 이를 알게 된 정씨는 이에 항의하는 서명운동을 하려다 저지당했고, 결국 자퇴를 결심했다. 이 시설은 지금도 자체 인증했다는 ‘방송영상전문인’ 자격증까지 내걸고 학생들을 모으고 있다.

 허위·과대 광고도 문제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S직업전문학교는 연기자 S씨, 가수 K씨, 개그맨 K씨 등 유명 연예인을 교수진으로 내세웠다. 검증되지 않은 스타 졸업생도 포함시켜 광고했다. 그러고선 “연예인에게 개인 레슨을 받을 수 있으며 취업까지 책임진다”고 했다. 이 학교는 지난해 4월 허위·과대 홍보로 경고를 받았다. 또 다른 K예술계 시설에 다닌 박모(24)씨는 “화려한 모집 광고와 실제 커리큘럼이 다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연예인 교수는 수업을 해도 휴강이 3분의 1”이라며 “실용음악 교수인 가수 K씨는 수업은 하지 않으면서 매번 수강생들을 자기 사무실로 불러내 시간을 때웠다”고 털어놨다.

 학점 인정 대안교육시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수업료로 사립 대학에 맞먹는 학기당 400만~500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일부 시설은 교육 내용이 부실하고 학점으로 공식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유아교육 전문인 서울 용산구의 H직업전문학교는 이번 학기부터 아예 과목 운영을 할 수 없다. 이 학교는 지난해 4월 정부에 새로 평가 인정을 신청한 12개 과목에서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 그나마 학점으로 인정되던 ‘아동심리’와 ‘부모교육’마저 지난달 만료됐다. 그러나 이 학교는 올해 또 신입생을 모집했다. 교과부 평생교육과 관계자는 “학점은행제가 다양한 학습자에게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것인 만큼 진입 자체를 제한할 순 없다”며 “다만 철저한 사후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후 관리를 하는 교과부 산하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기관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우후죽순 생겨나 피해 민원에 의존해 관리하는 게 현실”이라고 한계를 인정했다.

이지은 기자

◆학점 인정 대안교육시설=‘학점은행제 평가인정기관’이라고 불린다. 평가 인정 과목을 이수하면 평생교육법에 따라 학위를 수여한다. 2년제 전문학사는 80학점, 4년제 일반학사는 140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3월 현재 총 559곳에 달한다.

알려왔습니다  K학점인정기관을 다녔던 학생의 인터뷰를 인용해 “학점인정기관의 광고 내용과 실제 커리큘럼이 다른 경우가 많고 연예인 교수들은 휴강이 잦으며 실용음악 교수 가수 K씨는 수업을 하지 않고 개인 사무실로 불러내 시간을 때웠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K기관은 “모집광고와 커리큘럼이 일치하며 연예인 교수들은 정상적인 수업을 수행했다”고 알려왔습니다. 가수 K씨에 대해서는 “학위 및 학점 수여와 무관한 서비스 개념의 무학점 과목을 강의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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