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위기] 발묶인 돈 증시로 증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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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는 '콜촌'은행이 가장 안전하다는 말이 있다. 콜촌은 침대 매트리스를 말한다. 즉 침대 밑에 돈을 숨겨두는 것이 은행에 맡기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얘기다.

요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이 말의 중요성을 뼈에 사무치게 느끼며 산다.

지난해 12월부터 정부가 은행예금 인출한도를 한달에 1천페소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대도시에서 이 돈은 최저생계비 정도밖에 안된다.

땀흘려 번 돈을 마음대로 찾아 쓸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국민의 불만이 폭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월급이 고스란히 은행계좌로 들어가는 봉급생활자들의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와 은행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진지 오래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돈을 떼먹혔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돈이 은행에 묶여있는 동안 '1페소=1달러'환율정책이 폐지됐고, 그 결과 돈가치는 40%나 폭락했다. 가만히 앉아 예금액의 40%를 날린 것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정부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예금인출을 제한하지 않을 경우 은행이 도산해 혼란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작 하는 말이 "언젠가는 주겠다"는 정도다.

최근 취임한 에두아르도 두알데 대통령은 한술 더 떠 달러예금 동결조치도 발표했다.

페소예금에 대해선 한달 인출한도를 1천5백페소로 높였지만 페소화 가치하락으로 달러로 계산하면 1천달러 남짓에 불과하다.

산발적인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을 탓할 수 없는 지경이다. 정치불안이 여전하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주가는 강한 오름세를 타고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비밀은 예금인출제한조치의 구멍에 있었다. 예금을 현금으로 찾을 순 없어도 다른 계좌로 옮길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은행예금을 증권계좌로 옮긴 뒤 우량주를 대거 사들이고 있다. 돈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주식이라는 자산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특히 뉴욕 증시에 동시 상장돼 있는 종목이 인기다. 국내에서 산 주식을 뉴욕 증시를 통해 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뉴욕 증시의 주가가 이곳보다 싸면 그만큼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묶여있는 돈을 합법적으로 빼낼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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