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 공정거래 규제’ 중견기업 가장 큰 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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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중소기업 시절엔 ‘공정거래’를 가장 바라지만, 중견기업으로 점프한 뒤에는 ‘공정거래 규제’가 가장 큰 난관이다.” 중소기업을 ‘졸업’한 뒤 중견기업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대기업 규제는 ‘공정거래’와 관련한 규제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5일 중견기업 600곳을 설문조사한 결과인데, 중소기업들이 대기업들의 이른바 ‘3불’, 즉 불공정·불균형·불합리 행태를 비판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 각종 금융·세제 혜택이 사라지는 대신 200여 개의 ‘대기업 규제’를 적용받는다.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보호막’이 사라지고 ‘규제 폭탄’이 떨어지는 셈이다. 새로운 정부 규제를 적용받으면서 중견기업 다섯 곳 가운데 한 곳(19.2%)은 중견기업에 진입한 후 경영에 지장을 받는다고 응답했다. 가장 많은 기업이 ‘하도급에 의한 원사업자로서의 의무 등 공정거래 관련 규제’(30.8%)를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그 다음은 고용·복지 관련 규제(25.3%), 공공부문 입찰 제한(22%), 환경 관련 규제(9.9%) 순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4만4000여 곳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대기업의 지나친 납품단가 인하(64.4%), 납품 결제일 장기화(32%) 등을 개선해 달라고 호소했다. 충남 청주에 있는 금속제조업체인 A중소기업 대표는 “납품·협력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중소기업 출신) 대기업이 중소업체를 더 닦달하는 경향이 있다”며 “우리에게 법대로만 해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중견기업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 수도권에 있는 B중견기업 대표는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협력 중소기업에 60일 안에 대금 결제를 해주도록 한 하도급법상 보호 장치가 의무로 전환한다”며 “그런데 정작 (발주한) 대기업에서는 90~100일 만기 어음을 받기 일쑤여서 중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숭실대 박주영(벤처중소기업학) 교수는 “특히 대기업·중소기업이라는 이분법적 구조 때문에 중견기업이 비합리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중견기업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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