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뒤에 또 고개 숙일 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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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WBC 야구 대표팀은 자만심과 이기주의 때문에 무너졌다. 류중일 대표팀 감독(왼쪽 셋째)을 비롯한 선수들이 5일 대만전을 이기고도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하자 아쉬운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고 있다. 이들은 이기고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타이중(대만)=이호형 기자]

한국 야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탈락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

 야구 대표팀이 6일 대만 타이중에서 귀국해 쓸쓸하게 해단했다. 한국은 대만에 3-2 역전승을 거둬 1라운드 2승1패를 기록했지만 득실차에 따라 B조 3위로 탈락했다. 대표팀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타이중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류중일(50) 대표팀 감독은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전략·전술의 책임은 감독의 몫이다. 그러나 이번 WBC의 실패 원인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에 있었다.

김인식

 감독 선임 때부터 대표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현역 감독들이 “소속팀을 놔두고 시즌 직전 한 달 동안 자리를 비우는 건 부담스럽다”며 손사래를 쳤다. 동시에 1, 2회 WBC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김인식(66) 한국야구위원회(KBO) 육성위원장에게 대표팀 전임 감독을 맡기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KBO는 “우승팀 감독이 대표팀을 맡기로 했으니 약속을 지키자”며 현장의 목소리를 일축했다. 결국 201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류 감독이 대표팀을 맡게 됐다. 부임 2년 만에 대표팀 사령탑이 된 류 감독은 젊은 코치진을 구성했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대표팀이 노련한 벤치워크를 발휘하지 못한 이유가 됐다. KBO는 감독 선임의 원칙은 지켰지만 “WBC 우승을 하겠다”는 더 큰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감독 선임부터 잡음이 나오니 선수단 구성이 될 리 없었다. 류현진(26·LA 다저스)·추신수(31·신시내티)·봉중근(33·LG)·김광현(25·SK) 등이 이런저런 이유로 대표팀에서 빠졌다. 지난해 말부터 대회 전까지 일곱 차례나 명단이 변경됐다.

 김 위원장은 “결국 문제는 투수였다. 네덜란드에 0-5로 진 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대만에 준 2점도 내주지 않을 수 있었다. 빠진 투수들, 딱 그게 부족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1회 때는 세계 야구를 향해 전 구단과 야구인들이 합심했다. 코치들도 모두 프로 감독들이었고, 해외파 선수들이 총출동했다”면서 “2회 때 코치진 구성이 어려웠고, 해외파 선수들이 빠졌다. 이번엔 선수 선발부터 구단 이기주의가 심했다. WBC를 준비하는 태도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한국 야구는 2006, 2009년 ‘WBC 효과’를 톡톡히 봤다. 많은 스타가 탄생했고 지난해에는 700만 관중을 넘어섰다. 9구단 NC와 10구단 KT도 생겨 외연 확대에도 성공했다. 이번엔 ‘WBC 졸전 역효과’를 걱정해야 한다. 최근 프로야구의 인기와 경쟁력이 거품이라는 야구 원로들의 충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김성근(71) 고양 원더스 감독은 “냉정하게 바라보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새 판을 짜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면서 “1990년대 한·일 수퍼게임을 통해 한국 야구는 부족한 면을 발견했고, 이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실패 이유를 찾는 건 미래를 준비하는 출발점이 된다. 대표팀 전임 감독제 검토가 필요하고, 구단 눈치를 보지 않고 선수를 선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아울러 보너스 확대와 연금 지급 등 병역 혜택을 대신할 현실적인 보상책도 필요하다.

글=김식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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