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공기업 민영화' 인수위-현정부 엇박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공기업 민영화를 늦추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정부부처에서는 민영화를 당초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어 시장에서는 한마디로 헷갈린다는 반응이다.

김진표 인수위 부위원장은 23일 "철도와 전력 등 망(網)산업은 민영화의 속도와 폭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金부위원장은 이날 한경밀레니엄 조찬 포럼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사태에서 보듯 철도와 전력을 민영화하면 공공성을 훼손하고 민간 독점, 요금 인상 등의 우려가 있다"며 "선진국에서 이미 실패한 분야나 공익성이 높은 산업은 민영화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날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은 전력 민영화와 관련, "인수위와 원칙을 지켜간다는 데 합의했다"며 "남동발전도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당초 방침대로 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전력 민영화의 원칙이란 한전의 ▶발전 자회사 5개를 남동발전부터 차례로 모두 매각하고▶배전 부문도 6개 자회사로 나눠 2008년까지 민영화한다는 것이다.

辛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서도 "한전이 민영화에 반대하는 것은 (집단)이기주의"라며 "당초 예정대로 2008년까지, 여의치 않으면 한두해 넘기더라도 꼭 민영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인수위와 현 정부가 다른 얘기를 하자 당장 전력산업에 관심을 보이던 국내외 기업들이 주춤하고 있다.

22일 남동발전 매각 1차 입찰서를 접수한 결과 SK㈜와 포스코 등 네곳만이 참여했다. 대선 전인 지난해 11월 14곳이 입찰의향서를 냈으나 최근 상황이 애매하게 돌아가자 10곳이 무더기로 포기한 것이다. 일본 규슈전력과 미쓰비시, 호주 BHP사 등 외국사들도 줄줄이 등을 돌렸다.

입찰을 포기한 한 업체 관계자는 "최근 국내외 상황을 감안할 때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전은 2월 중 남동발전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다른 발전 자회사의 민영화가 물건너가는 분위기인데, 유독 남동발전만 매각이 제대로 진행될지 의문스러워하고 있다.

배전 분야 민영화는 아예 손도 못 대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산자부가 그동안 배전분야를 6개 자회사로 쪼개 팔기에 앞서 6개의 독립 사업부제를 도입할 것을 요구해왔으나 올들어 얘기가 쑥 들어갔다"고 전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공기업 민영화는 정권에 힘이 있는 초기에 밀어붙이지 않으면 영영 못한다"며 "벌써부터 민영화의 속도를 조절한다는 식으로 나오면 새 정부에서 크게 기대할 게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새 정부가 민영화에 앞서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입장인데, YS 정권에서도 매각 대신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으나 결국 실패했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새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고현곤.이상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