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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고 숨기기 누가 잘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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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현기
도쿄 총국장

열흘 전 일본 TV에 고고학자 16명이 나라(奈良)현의 한 고분을 걸어가는 모습이 나왔다. 이 고분은 일본 최초의 여왕 히미코(卑?呼)의 묘. 학자들이 이번에 발을 들여놓은 건 히미코가 죽은 지 실로 1765년 만이었다. 일 궁내청에선 그동안 이 묘에서 뭐가 나올지 두려웠는지 문을 걸어 잠그고 숨겼다. 이번에 허가한 것도 고분의 하단을 가이드 같은 공무원의 지시에 따라 1시간여 걸어 관찰하는 ‘관광코스’나 다름없었다. 유물 채취나 발굴은 꿈도 못 꿨다.

 수년 전 오사카 사카이(堺)시 청사에서 내려다본 제16대 인덕왕(313~399년 재위)의 능도 마찬가지였다. 1872년 출토된 청동거울이 백제 25대 무령왕릉에서 나온 것과 일치한 사실이 일본에는 부담이었을까. 묘 주변은 철통보안 태세다.

 굳이 역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일본만큼 숨고 숨기는 사회도 없을 게다.

 그도 그럴 것이 집단의 그늘 안에 숨어야 출세하는 게 일본이다. 아무리 슬프고 기쁘고 화나도 얼굴에 드러나지 않게 숨겨야 인정받는 사회다. 얼마 전 만난 일본의 한 종합상사 간부의 이야기. “입사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가 ‘호렌소’(시금치라는 뜻)예요. 호코쿠(보고), 렌라쿠(연락), 소단(상담)의 앞 글자죠. 말은 그럴싸하지만 결국은 내부에서 해결할 걸 외부로 알리지 마라는 거예요.”

 이런 일본적 상황에서 놀랄 만한 게 있다. 조간신문에 나오는 총리 동정란이다. 그 전날 총리가 누구랑 어디서 얼마나 만났고 어느 이발소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 등 시시콜콜한 정보가 분 단위로 실린다. 토·일요일도 어김없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를 보고 독자들은 총리의 요즘 관심사가 뭐고, 누굴 통해 뭘 하려 하는지 감을 잡는다.

 얼마 전 한 행사장에서 아베 총리의 홍보담당자에게 이를 물었다. “사전에 알리면 국가기밀이 되겠지만, 사후에 자세히 알리는 건 국민에 대한 예의이자 서비스”라는 그의 답에 무릎을 쳤다.

 이뿐 아니다. 청와대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관방장관은 매일 오전·오후 30분가량씩 회견을 연다. 기자들의 속사포 질문에 답을 피하는 경우란 없다. 인사도 마찬가지. 총리관저의 보좌관·비서관에 대한 인사정보는 신속하게 프로필까지 첨부해 언론에 알린다. 울화통 터질 정도로 숨고 숨기는 일본 사회이지만 국가의 녹을 먹고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 일거수일투족은 철저히 공개하고 검증한다.

 청와대의 정보공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비서관 인사 내용을 “그런 것까지 알려야 하나”며 알리지 않았다. 대변인이란 사람은 알리기보다 기자들을 훈계하며 정보 숨기기에 급급하다. 묻지도 않은 대통령의 외국어 실력은 장황하게 선전하면서 말이다.

 한국에선 동네북인 아베 정권이지만 겸허하게 배울 게 있다. ‘국민에 대한 예의와 서비스’, 그건 공복(公僕)의 의무이자 존재의 의미란 걸 자각하는 것이다. 그걸 외면하면서 어찌 ‘국민행복시대’를 논하겠는가.

김 현 기 도쿄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