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바닥을 박차고 오른 적 있는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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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호 28면

1789년을 기억하는가. 바로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해다. 왕만이 주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노예일 수밖에 없었던 왕조 체제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면서, 드디어 시민 사회가 프랑스에 도래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프랑스에만 국한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포함한 모든 곳에서 진행되었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현재적 사건이기도 하다. 왕정이든 독재든 시민을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만들려는 모든 권력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당시 파리를 뒤엎었던 혁명의 이념, 그러니까 자유(Liberte), 평등(Egalite), 그리고 박애(Fraternite)였다. 소망 가득한 사회를 꿈꾸는 모든 사람이 아직도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 이념들은 바로 모든 사람이 저마다 동등하게 주인이 되는 사회를 꿈꾸는 이들의 슬로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프랑스혁명의 3대 이념에 너무 취하지는 말자. 여기서 자유는 사적 소유의 자유이고, 평등은 법 앞에서 평등이었으니까 말이다.

빅토르 위고 (Victor Hugo·1802~85) 문학청년이었던 위고는 열일곱 살에 평론지 ‘르 콩세르바퇴르 리테레르’를 창간하고 『파리의 노트르담』을 출간해 소설가로서 성공한다. 1848년 혁명을 계기로 왕당파에서 공화주의자로 변신, 나폴레옹과 대립해 20여 년 동안 고달픈 망명 생활을 했다. 이후 대작 『레 미제라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죽음은 국장으로 치러졌는데, 평론가 귀스타브 랑송에 의하면 “그의 시신은 밤새도록 횃불에 둘러싸여 개선문에 안치되었고 파리 온 시민이 팡테옹까지 관 뒤를 따랐다.”

20세기가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으로 양분된 것도 사실 자유와 평등 중 어느 가치를 우선시하느냐의 여부로 결정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 망각된 이념이 박애 아니었을까? 만일 박애가 지나친 사적 소유를 억제할 수만 있었다면 자본주의의 폐해는 거의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만일 박애가 획일적인 평등주의를 억제할 수만 있었다면 사회주의의 반인간주의도 모습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연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치열한 갈등도 사라졌을 것이고, 우리 사회에도 분단이란 참담한 현실이 남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가 1862년 출간된 빅토르 위고의 대작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을 읽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내면을 획일적으로 재단하는 과도한 평등주의나 타인이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물로 만드는 과도한 자유주의를 넘어서려면 박애, 그러니까 사랑의 원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제트에게 내가 무엇이오? 한 지나가는 사람이오. (…) 코제트는 고아였소.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었소. 그녀는 내가 필요했소. 그런 까닭에 나는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오. 어린아이들은 아주 연약하므로, 아무라도, 심지어 나 같은 사람이라도, 그들의 보호자가 될 수 있는 것이오. 나는 코제트에 대해서 그런 의무를 행한 것이오. 이렇게도 하찮은 일을 정말 선행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지만 만일 그것이 선행이라면, 그래요, 내가 그것을 행했다고 해 두시오.”
방금 읽은 것은 고아 소녀 코제트를 거두어들인 장 발장이 자신의 속내를 술회하는 대목이다. 매몰찬 사회에서 절망하던 소설의 주인공 장 발장은 이미 미리엘 신부의 박애에서 희망을 발견했던 적이 있었다. 점점 박애의 주체로 거듭나는 장 발장의 박애의 감정을 철학적으로 더 명료화하기 위해 잠시 스피노자의 말을 들어보자.
“박애(benevolentia)란 우리들이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친절하려고 하는 욕망이다.”(스피노자의 『에티카』 중)
명료한 지적이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든다. 스피노자의 정의를 따른다면, 우리가 누군가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박애의 감정은 생길 여지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불쌍히 여긴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다행히 스피노자는 우리의 이런 궁금증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과 유사한 어떤 것이 어떤 정서에 자극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것과 유사한 정서에 의해 자극된다”라고 그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다.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과거 자신의 모습과 양친을 여의고 오갈 데가 없어진 코제트는 장 발장에게 “자신과 유사한” 존재였던 셈이다. 그러니 코제트의 비참함은 바로 장 발장의 내면에 트라우마로 각인돼 있던 비참의 느낌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렇다. 배고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밥을 못 먹고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밥을 나누어줄 수 있다. 가혹한 추위 속에서 생사의 기로에 서 있었던 사람만이 떨고 있는 사람에게 옷을 벗어 줄 수 있는 법이다. 반대로 배고픔도 추위도 경험하지 못했던 사람은 노숙자를 불쌍하게 여기기보다는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회피하거나, 아니면 경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야 위고가 왜 자신의 대작에 ‘레 미제라블’, 그러니까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가 된다. 삶이 가장 비참해질 때, 그러니까 삶이 그 바닥에까지 떨어질 때 우리는 모든 사람을 품어줄 수 있는 역량을 기르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좌절하지 않고 그 바닥을 차고 올라오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는 마침내 박애의 감수성을 배우게 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묘한 역설이 발생한다. 비참한 삶을 겪어내는 사람은 마침내 박애라는 숭고한 정신을 배우지만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박애는 막연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진정으로 비참한 사람은 박애를 망각한 이 후자 아닐까?



강신주 대중철학자『. 철학이 필요한 시간』『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상처받지 않을 권리』등 대중에게 다가가는 철학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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