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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다나카, 메이저리그 정조준 ‘와인드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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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호 19면

대만 자이현 도류구장에서 전지훈련 중인 WBC 대표팀이 지난달 19일 오후 NC다이노스와 연습경기를 가졌다. 선발로 등판한 윤석민이 공을 던지고 있다. 도류(대만)=김민규 기자

대한민국 왼손 에이스 류현진(26·LA다저스)은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하지 않았다. 류중일(50) 대표팀 감독과 김인식(66)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예비 엔트리를 작성하며 류현진의 이름을 넣었다. 이후 여러 차례 구애도 했지만 결국 류현진은 대표팀 합류를 고사했다.
오른손 에이스 윤석민(27·KIA)은 2013년 WBC 대표팀의 1선발 역할을 맡았다. 그의 대표팀 합류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다. 그의 WBC 참가를 걱정한 사람도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투수의 다른 신분이 만든 결과다.
류현진은 2012년 시즌이 끝난 뒤 원소속 구단 한화의 동의를 얻어 세계 최고 무대인 미국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반면 1년 전 KIA의 반대로 미국행을 포기했던 윤석민은 2013년 시즌 후 어느 구단이든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는 프리에이전트(FA)가 된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관심과 자신의 의지만 있으면 된다. 해외진출을 꿈꾸는 윤석민에게 WBC는 ‘쇼케이스’다.

WBC는 야구계 ‘국제 취업박람회’

BA 선정 유망주 20명 중 8명 미국행
2009년 2회 WBC가 끝난 뒤 미국의 격주간지 베이스볼 아메리카(BA)는 ‘메이저리그에 등록되지 않은 해외 유망주 20명’을 선정했다. 이 중 8명이 현재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있다. 당시 BA가 유망주 1순위로 꼽은 다루빗슈 유(27·텍사스)는 5170만3411달러(약 566억원)의 역대 최고 이적료로 2012년 미국 땅을 밟았다. 2위 아롤디스 채프먼(25·신시내티), 3위 이와쿠마 히사시(31·시애틀)도 화제를 뿌리며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5위는 류현진이었다. LA 다저스는 지난해 말 한화에 2573만7737달러33센트(약 278억원)의 거액을 주고 류현진을 데려갔다.
요에니스 세스페데스(28·오클랜드), 아오키 노리치카(31·밀워키), 나카지마 히로유키(31·오클랜드), 후지카와 규지(33·시카고 컵스)도 WBC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미국 진출에 성공했다.

다나카 마사히로

당시 4위에는 다나카 마사히로(25·라쿠텐)가 올랐다. 2009년 다나카는 고졸 3년생 어린 선수였다. 이후 4년간 다나카는 더 성장했다. 올 시즌이 끝나고 구단(라쿠텐) 동의를 얻으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다.
다나카는 지난해 말 “2013년 시즌 뒤에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허락해 달라”고 구단에 말했다. 라쿠텐은 “다나카가 메이저리그 도전을 희망할 경우 그의 뜻을 존중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일본 언론은 “WBC 이후 다나카를 놓고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쟁탈전이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2007년 일본 고교 드래프트 1순위로 라쿠텐에 입단한 다나카는 시속 150㎞를 넘나드는 강력한 직구와 종과 횡으로 변하는 두 가지의 슬라이더로 일본 야구계를 뒤흔들었다. 2010년 말에는 브라이언 폴켄버그(소프트뱅크)로부터 ‘스플리터 그립’을 배운 뒤 같은 계열인 포크볼을 완성했다. 140㎞대의 빠른 포크볼은 다나카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2007년과 2008년 3점대였던 평균자책점(3.82-3.49)이 2009, 2010년 2점대(2.33-2.50)로 내려갔고, 2011, 2012년엔 1점대(1.27-1.87)를 기록했다.

일본 스포츠호치는 “WBC는 다나카 몸값 상승을 이끄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메이저리그는 일본 에이스를 인정한다. 마쓰자카 다이스케(33·클리블랜드)와 다루빗슈를 거액을 주고 영입했기 때문에 다나카의 미국행 가능성은 높다. 몸값이 문제다.
다나카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무대가 이번 WBC다. 4강 이후 일정이 미국으로 잡혀 있고, 미국 혹은 중남미 국가를 상대할 때 메이저리거와 상대하게 된다. 또 WBC에서는 일본의 공인구와 다른 메이저리그 공인구 롤링스를 사용한다. 표면이 미끄럽고 솔기가 평평한 롤링스 공으로 다나카가 다양한 구종을 던진다면 그의 몸값은 다루빗슈 연봉 못지않게 치솟을 전망이다. 다루빗슈의 연봉은 6년 총액 6000만 달러(약 650억원)다.
윤석민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 윤석민은 2009년 WBC 준결승전 당시 메이저리거가 즐비한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6과 3분의 1이닝 동안 7피안타 2실점으로 호투했다. 주무기 슬라이더도 자신 있게 던졌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던진다면 윤석민은 류현진처럼 국제무대 검증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입성할 수 있다.
 
다나카, 다루빗슈급 계약 따낼지 관심
스티브 윌슨 시카고 컵스 극동 아시아 스카우트는 한국을 찾았을 때 “류현진과 윤석민 혹은 윤석민과 김광현(25·SK)이 맞대결하는 경기를 보면 좋겠다. 두 투수를 한 번에 볼 수 있다면 회사 경비도 아낄 수 있지 않는가”라며 웃었다. 이들을 보느라 수도권과 지방을 오가는 게 힘들다는 말이었다.
일본과 한국을 이동할 수고를 덜어준다면 스카우트들에겐 최고의 선물이다. WBC 한·일전은 그런 의미다. 2013년 WBC에서 다나카와 윤석민이 맞대결을 펼친다면 스카우트들은 미국에서 일본, 일본에서 한국,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고 도는 긴 여정을 생략할 수 있다.

WBC는 미국 스카우트와 아마추어 최강 쿠바 선수들이 만나는 기회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미리 수집해둔 쿠바 선수들의 정보를 국제대회를 통해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야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퇴출됐기 때문에 정상급 쿠바 선수를 분석할 수 있는 기회는 WBC밖에 없다.
쿠바는 국제대회 출전 선수가 대회 기간 중 망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기량이 뛰어난 쿠바 선수를 발견하면 비밀리에 접촉을 시도하고, 망명을 추진한다. 채프먼과 세스페데스도 2009년 WBC를 통해 메이저리그급 기량을 과시한 뒤 각각 2010년과 2012년 망명했다.
WBC는 ‘재취업’의 장이 되기도 한다. 무적(無籍) 선수들의 패자부활전인 셈이다. 2009년 소속 팀이 없었던 이반 로드리게스(푸에르토리코)와 시드니 폰슨(네덜란드)은 대회 직후 휴스턴과 캔자스시티와 계약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대만의 두 야구 영웅이 같은 꿈을 꾼다. 2005년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 왕첸밍(33)은 2006년과 2009년 WBC,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대만 대표팀 합류를 거부했다. 그는 2006년과 2007년 메이저리그 아시아투수 단일 시즌 최다승(19승)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09년부터 허리 부상으로 고전했고 2012년 워싱턴에서 2승(3패)만 거둔 뒤 방출됐다. FA 신분인 그에게 미국의 몇몇 구단이 스플릿 계약(메이저리그 계약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별도로 하는 것)을 제시했다. 하지만 왕첸밍은 사인을 미루고 WBC 대표팀 합류를 선언했다. WBC를 통해 건재를 과시하겠다는 각오다. 메이저리그 218경기에 나섰던 베테랑 궈훙치도 2012년 시애틀과 시카고 컵스에서 연이어 방출당해 소속팀이 없다. 그에게도 WBC는 재취업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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