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온라인 우주' 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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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항공우주센터의 천문학자 게르하르트 한은 지난 여름 망원경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명왕성 바깥에서 발견된 소행성 ‘2001 KX76’의 크기와 궤도를 계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소행성은 지난 5월에야 발견됐다. 그후 몇달 동안 망원경으로 KX76의 사진을 찍었지만 데이터가 부족했다. 새로 사진을 찍어 소행성의 크기와 궤도를 알아내려면 몇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한은 ‘가상적’인 것을 택했다. 연구팀은 컴퓨터 프로그램 ‘아스트로버텔’을 작동했다.

이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허블 우주망원경과 남유럽관측소(ESO)에서 찍은 사진을 스캔해 정리한다. 한이 KX76의 좌표를 입력하자 뜻밖에도 1982년에 우연히 찍힌 사진이 나왔다. 한은 “이 프로그램으로 19년 전의 관측 데이터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사진과 최근 사진 6장에 근거해 이 소행성의 궤도와 크기를 계산하기란 너무도 쉬웠다. 결과는 놀라웠다. 한은 “KX76은 지금까지 발견된 소행성 중 가장 큰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기술 발전은 천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제 천문학자들은 대형 망원경에 딸린 춥고 비좁은 관측실을 지킬 필요가 없다. 과거의 천문학자들은 희미한 은하계의 빛을 감광판에 노출하느라 혼자서 긴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 천문학자는 따뜻한 통제실에서 편히 앉아 있고 디지털 장비들이 데이터를 모은다.

게다가 천문학자들은 집에서 컴퓨터로 하와이나 칠레, 심지어 우주망원경으로 얻은 데이터까지 받아볼 수 있다. 이제 사이버 천문학은 한층 더 비약적인 진전을 준비하고 있다. 퀘이사의 스펙트럼에서 블랙홀 방사측정까지 우주망원경·지상망원경으로 얻은 데이터의 상당 부분은 아직 묻혀 있는 상태다. 천문학자들은 망원경을 보지 않고도 이런 보석을 캐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10월 미국과학재단(NSF)은 향후 5년간 ‘가상 천문학’에 1천만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유럽 천문학자들도 가상 관측소를 만들고 있다. ESO의 피에로 벤베누티는 그것을 “새로 망원경을 만드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데이터베이스가 연결될 것이다.

존스 홉킨스大 천체물리학자 알렉산더 스잘라이는 “목표는 인터넷을 세계 최고의 망원경, 즉 ‘월드 와이드 텔레스코프’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앞에는 상당한 과제가 놓여 있다. 천문학 데이터는 해마다 배로 늘어난다. 망원경으로 하루 동안 관측한 자료만 해도 수백 기가바이트에 이른다. 적외선 파장으로 지금까지 관측된 모든 자료만 해도 수 테라바이트에 이른다(1테라바이트의 정보는 2억3천1백만쪽의 지면을 채울 수 있다).

‘월드 와이드 텔레스코프’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은하계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가 우선 연구 대상이다. 대개 망원경 한대로 적외선 사진을, 다른 망원경으로 가시광선 사진을, 또 다른 망원경으로 자외선 사진을 찍는다. ESO의 천체물리학자 피터 퀸은 “다른 스펙트럼의 데이터는 각각 다른 시간에 다른 망원경으로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은하계 내의 물리적 성질을 이해하려면 다양한 파장의 데이터를 종합해야 한다.

‘월드 와이드 텔레스코프’는 여기에 이상적인 도구다. 가상 천문학은 우주의 팽창 속도가 얼마인지, 그리고 팽창은 영원히 계속될 것인지 등의 연구에도 기여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은하계가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 알아야 하지만 망원경 한대로 얻은 데이터로는 어림도 없다. 또 ‘월드 와이드 텔레스코프’는 현재 답보 상태에 있는 은하계 형성에 관한 연구에도 전기를 마련할 것이다.

우주의 유아기·소년기·중년기·노년기를 파악하려면 수 테라바이트의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상 천문학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다면 태양계에서 가장 큰 소행성의 발견은 ‘온라인 우주’로 향하는 길에서 얻은 아주 조그만 진전에 불과할 것이다.

Sharon Begley 기자
자료제공 : News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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