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까지 나섰지만 꽉 막힌 정부조직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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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국무총리(오른쪽)가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취임인사를 위해 문 비대위원장을 방문한 정 총리는 이 자리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를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김형수 기자]

취임 이틀째를 맞은 정홍원 국무총리가 28일 국회를 찾았다. 세종시에서 서울까지 1시간10분 걸렸다고 한다. KTX 타는 시간(40분) 외에 역까지 오가는 시간을 합하면 2시간 정도 걸린다는 게 정 총리의 말이다. 취임 후 첫 상견례의 성격이었지만, 교착 상태에 빠진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처리하기 위해 총리가 나선 모양새였다.

 정 총리는 강창희 국회의장을 만나 “새 정부가 출범해서 제대로 굴러가도록 도와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 의장은 새누리당 황 대표가 이날 오전 제안한 ‘여야 대표-원내대표 연석회의’를 거론하며 “연석회의가 성사된다면 잘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곧 이어 황 대표를 만난 정 총리는 “정부조직법이 통과돼 정부가 출범을 잘해야 한다”고 했고, 황 대표는 “양당이 머리를 맞대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의 키를 쥔 문희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문 위원장은 전날 정 총리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쾌척한 것과 관련해 “뜻이 있어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아야 한다”고 덕담을 했다. 정 총리도 덕담으로 응수했으나 ‘본론’이 나오자 이견이 노출됐다.

 ▶정 총리=“훌륭하신 인품 잘 알고 있다.”

 ▶문 위원장=“몸무게로만. 저는 대통령 심기를 읽는 데 도가 텄다. 직언을 해주세요. 막상 들으실 때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힘든 일이다. 직언하는 게. 그러나 안 하면 안 된다.”

 ▶정 총리=“(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뵌 바로는 굉장히 많이 들으시더라.”

 ▶문 위원장=“동료 의원으로 (박 대통령을) 뵀을 때도 그렇더라. 소통만 잘하면 성공한 대통령이 되실 거다. ”

 ▶정 총리=“도와 달라.”

 ▶문 위원장=“ 우리는 정말 협조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정부조직법은 대통령 직제대로 임의로 하는 게 아니고 법률 개정 형태라 여야가 합의할 수밖에 없다.”

 ▶정 총리=“국민이 선출했으니 박 대통령이 철학을 갖고 하도록 해달라. 정부가 성공하면 야당도 성공한다. 역사가 정부와 별개로 야당만 평가하는 경우는 없다. 도와주면 같이 좋은 평가를 받을 거다.”

 ▶문 위원장=“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하면 그건 불통이다. 어차피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결심해 주시고. 제일 말씀드리고 싶은 건 박 대통령이 여당에 재량권을 줘서 ‘합의만 해 와라’라고 해도 조금 풀릴 것 같다.”

 비공개 면담에서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관련된 얘기가 계속됐다. 정 총리가 “통 크게 도와 달라”고 하자 문 위원장은 “이미 내 몸무게보다 통 크게 많이 해주지 않았느냐. 이건(방송 진흥정책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 부처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 철학의 문제라 안 된다”고 답했다고 한다.

 문 위원장은 ‘정부조직 개편으로 방송을 장악하려는 것 아니냐’며 정 총리를 압박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 총리가 “대명천지에 그럴 일이 있겠느냐”고 강하게 부인했으나 문 위원장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법이고, 그럴 소지가 다분해 이 문제를 쉽게 넘어갈 수 없다”고 완강한 입장을 고수했다.

 이와 별도로 여야 원내대표단은 이날도 물밑 접촉을 벌였지만 진전을 보지 못했다. 민주당은 황 대표가 제안한 연석회의에 대해서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이와 관련해 1일부터 시작되는 연휴가 협상의 고비일 거란 얘기가 많다. 2월 임시국회는 3월 5일 끝난다. 연휴 기간 처리 일정을 합의하지 못하면 3월에 다시 임시국회를 소집해야 하고, 장기전에 들어가야 한다.

글=권호·하선영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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