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화 큰별 이두식 홍익대 교수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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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두식 홍익대 교수가 타계 전날인 22일 오후 자신의 정년 퇴임 기념전에 참석해 대표작 ‘잔칫날’ 앞에 섰다.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사진 홍익대 현대미술관]

‘잔칫날’ 같은 삶이었다, 그의 대표작 제목처럼. 홍익대 이두식 교수가 23일 별세했다. 66세.

 제자들이 마련해 준 자신의 퇴임 기념전 개막식에 참석했던 그는 그날 밤 경기 구리시 자택에서 잠든 후 그대로 떠났다. 장례위원장인 한국미술협회 조강훈 이사장은 “아침에 가족이 깨우러 갔더니 이미 숨이 멎어 있는 상태였다. 전시 준비를 비롯해 그간 많은 일을 하느라 과로한 끝에 심장마비가 왔다는 게 병원 쪽 판단이었다”고 전했다.

 경북 영주 출신으로 홍대 미대와 대학원을 나와 1984년부터 모교 교수로 재직해 온 고인은 이달 말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었다. 22일 퇴임 기념전 개막식에서 그는 “정년으로 강단을 떠나는 것은 아쉽지만 새로운 출발선에 선 심정이라 설렌다. 달라진 그림을 내놓을테니 기대해 달라”며 의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퇴임 기념전은 홍익대 현대미술관에서 다음 달 12일까지 열리는 ‘이두식과 표현·색·추상’전이다. 오는 4월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대규모 회고전도 준비 중이었다.

 1960년대 데뷔 이래 고인은 40여 년 간 한국 추상미술의 맥을 이어왔다. 적·청·황·백·흑의 화려한 오방색(한국의 전통색)을 흩뿌리듯 그린 ‘잔칫날’ 시리즈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세계관을 표현해 왔다. 국내외에서 70여 차례 개인전을 여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이탈리아 로마의 플라미니어 지하철역엔 가로 8m의 대형 모자이크 벽화를 설치하는 등 공공미술 작업도 해 왔다. 사진관집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생전에 “젊은 시절 가장으로 생계를 꾸리느라 7년 이상 수출용 ‘이발소 그림’을 그렸다. 밤이면 집에 돌아와 ‘내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루 4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다”고도 말했다. 홍익대 서영희 교수는 “고인의 ‘잔칫날’ 연작은 활력과 생명력이 넘친다”며 “서양 색채추상의 형식에 민족 고유의 정서와 미감을 담아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평했다. ‘미술계 마당발’로 불리던 그는 48세에 한국미술협회 최연소 이사장을 비롯해 예술의전당 이사, 외교통상부 미술자문위원을 역임하는 등 미술행정가로도 활약했다. 2007년부터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도 맡아왔다. 한국 대학배구연맹 회장, 한국 실업배구연맹 회장도 지냈다.

 유족은 아들 하린(건국대 도자공예 교수)·하윤(사업)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26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도 파주 청파동성당묘역. 장례는 미술협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일 오전 10시30분 인사동사거리에서 노제가 거행된다. 02-2258-5940.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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