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잘 돼야 국내 리그도 흥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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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1·2회 감독을 맡았던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 기술위원장은 “이번 WBC는 한국 야구의 위기이자 기회”라며 “이번엔 기술위원장으로 대표팀과 함께하지만 여전히 긴장되고 설렌다”고 말했다. [지미연 포브스 기자]

다음 달 2일 개막하는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앞두고 김인식(66)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의 고민은 또 깊어졌다. “감독일 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고.” 그는 WBC를 상징하고 압축하는 인물이다. 미국을 쓰러뜨리고 4강에 올랐던 2006년 1회 대회, 일본과 다섯 차례 격전을 벌이며 준우승을 차지했던 2009년 2회 대회 사령탑이었다. 개성 강한 선수들을 모아 세계 최고의 팀워크를 이끌어낸 강한 리더였다. 이번 대표팀은 류중일(50) 삼성 감독이 이끌고 있다. 김 위원장도 훈련지인 대만에서 선수단을 지원하고 격려하고 있다. 유니폼이 아닌 평상복을 입었지만 그는 여전히 싸우는 중이다.

 - 감독이 아닌 기술위원장으로 이번 대회를 치릅니다. 마음은 좀 편하겠네요.

 “그렇지 않아. 대표팀 구성이 썩 좋지 않잖아. 류 감독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메이저리그 소속인 류현진·추신수 등은 뛰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다른 선수들이 너무 많이 빠졌어. 지난해 11월 엔트리 28명을 발표한 뒤 7명이나 교체됐고. 그래도 믿어야지. 우리 실력만 발휘하면 2라운드에서 만나는 일본·쿠바와도 해볼 만하다고 봐. 대진운도 나쁘지 않고.”

 - 예전에도 낙관적인 전망은 거의 없었지요.

 “1회 대회는 정말 멋모르고 했지. 팬들은 한·일전에 관심을 가졌지만 대표팀 감독 입장에선 메이저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이나 멕시코전이 더 걱정됐어.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했지. 한국 야구가 처음으로 세계 최고의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붙는 거였잖아. 멤버를 보면 도저히 우리가 상대하기 어려운 선수들이었지만 멕시코를 2- 1. 미국을 7- 3으로 이겼잖아. 특히 미국을 크게 이길 줄 몰랐어. 이승엽이 홈런 한 방 치고, 대타로 내보낸 최희섭이 또 한 방 때리고. ‘아, 얘네들과도 붙을 만하다’고 처음 생각했지.”

 - 어려울 때도 우리 대표팀은 분위기가 항상 좋았던 것 같습니다.

 “1회 대회 1라운드 일본전(3월 5일)이었어. 승엽이가 갑자기 ‘감독님, 오늘 제가 한 방 치면 용돈 주실 겁니까’라는 거야. 평소 안 그러던 녀석이 왜 그러나 했지. 그래서 ‘잘하기만 해’라고 눙쳤더니 ‘200달러 주십시오’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하더라고. 허허. 근데 승엽이가 역전 홈런을 쳤잖아. 경기가 끝나니까 승엽이가 ‘감독님, 용돈 주셔야죠’ 하더라고. 달러가 없어서 2만 엔을 줬지. 근데 그걸 박찬호가 본 거야. 그러더니 ‘저도 오늘 잘 던졌습니다’라며 손을 내미는 거야. 찬호와는 약속한 게 아니지만 어쩌겠어. 기분 좋게 2만 엔을 줬지. 나중에 생각해보니 좀 이상한 거야. 난 연봉(한화 이글스) 2억원을 받을 때였고, 저 녀석들은 내 몇 십 배를 버는데 말이야. 그래도 뭐, 어른이 줘야지. 허허. 그런 일들로 팀 분위기가 좋아졌지.”

 - 1·2회 대회 모두 잘하고도 마지막에 일본에 졌어요.

 “경기를 할수록 투수력 차이가 드러나는 거지. 대회 내내 이기다가 마지막 경기에 지니까 가슴이 저리더라고. 특히 일본한테 지면 못 견디잖아. 아쉬움과 미안함을 갖고 귀국했는데 난리도 아니었어.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오고, 축하 인사도 많이 받고. 결선 라운드를 치를 때는 미국 교민들이 ‘야구 때문에 정말 행복합니다’라고 얘기해주더라고. 그땐 정말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 그래서 더욱 2회 대회 결승전 패배가 아쉽겠네요.

 “결승전 연장 10회 스즈키 이치로에게 결승타를 맞았잖아. ‘볼넷을 줘도 좋으니 어렵게 승부하라’고 사인을 냈어. 계속 파울이 나더니 결국 안타를 맞았지. 포수 강민호와 투수 임창용에게 사인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거야. 지금도 기자들이 이 질문을 한다고. 일본 취재진도 계속 집요하게 물어봐. 긴박한 상황에서 내가 너무 어렵게만 생각했던 것 같아. 다음 타자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이치로를 티 나지 않게 볼넷으로 내보내려 했는데 사인을 명확하게 전달하지 않은 거야. 그 순간, 내가 진 거야. 이 나이에 야구를 다시 배웠다니까. 똑같은 장면이 벌어진다면? 당연히 포수에게 일어나서 공을 받으라고(고의 볼넷을 주라고) 해야지.”

 - 다들 우리의 강점은 팀워크라고 얘기합니다.

 “선수층이 얇은 게 단일팀을 만들 때는 편할 수 있지. 지난해까지 프로 팀이 8개밖에 안 됐고, 선수들이 서로 잘 아니까. 죄다 선후배잖아. 예를 들어 승엽이가 부진하다고 치자. 감독이 승엽이를 계속 라인업에 넣어도 우리 선수들은 불만을 갖지 않잖아. 승엽이를 잘 알고, 언젠가 해줄 걸로 믿으니까. 단기전에서 이런 모습은 정말 큰 힘이야. 다른 팀에서는 그게 안 되지. 서로 자기가 더 잘한다고 생각하니까.”

 - 감독님의 명언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나요.

 “2회 대회 때 코치진과 선수 구성이 너무 어려운 거야. 자기네 사람들 안 주려는 구단 이기주의가 심했지. 그래서 대표팀으로서의 책임감을, 국민으로서의 애국심을 요구한 거였어. 사실 그 말은 지금도 다시 하고 싶어. 프로야구 700만 관중 시대가 열렸고, 10구단이 생겼잖아. 다들 야구가 계속 인기를 끌 것이라고 맹신하잖아. 그건 좁은 생각이야. 그럴수록 나라가 부르면 나가야 돼. 작게는 대표팀 성적이 떨어지면 국내 리그 흥행에도 타격을 입어. 크게는 스포츠도 국가 안에 있으니 국가를 먼저 생각해야지. 마침 일본은 그때 ‘사무라이 재팬(일본 대표팀 별칭)’ 어쩌고 하면서 붐업이 돼 있었거든. 그런 면에서 아쉽더라고. 사무라이가 칼 들고 덤비면 우린 삼지창이라도 꺼내 일단 막아야 할 거 아니야?”

 - 2009년 시즌 뒤 한화 감독에서 물러났는데요.

 “WBC 대회 기간이 국내 구단의 스프링캠프, 시범경기와 겹쳐. 아주 중요할 때 소속 팀을 비우는 건 분명 부담이야. 2009년 한화가 하필 그해 꼴찌를 했어. 재계약을 하지 못했지만 후회하지 않아. 내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시즌 초 김태균·이범호가 연달아 부상으로 빠지는데 어쩔 수 없잖아. 원체 팀이 약하기도 했고. 1회 대회를 치르고 온 2006년엔 한화가 한국시리즈(준우승)까지 갔잖아. 대표팀 맡은 걸 후회 안 해.”

 - 큰 리더는 사사로운 마음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렇게 말하기엔 좀 거창해. 감독 얘기를 더 하자면,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지. 먼저 좋은 의사가 돼야 해. ‘이 환자는 어디가 아프다’라고 진단만 할 게 아니라 낫게 해야지. 선수의 단점은 누구나 알아. 그걸 극복하도록 돕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지. 이건 기술적인 문제고, 중요한 건 역시 사람을 움직이는 거야. 그런 면에서 내가 아는 최고의 리더십은 ‘짜장면 리더십’이야. 내가 중학교(배문중)에 다닐 때 박지완 감독님이 월급날마다 우리들을 모아놓고 짜장면 파티를 열었어. 감독님이 꺼내신 노란 봉투가 아직도 생각나. 그때는 ‘돈이 있으니까 사주시겠지’라고만 생각했어. 그런데 선생님도 박봉이잖아. 자기도 어려운데 배고픈 아이들의 허기진 몸과 마음을 짜장면으로 채워주신 거야. 자기가 어려워도 배려하고 베푸는 사람, 그래서 당장이 아니라 나중에 이해받고 인정받는 사람이 진짜 리더지.”

 - 그런 지도자는 세월이 만드는 것 같습니다.

 “내가 팔꿈치 부상으로 일찍 선수생활을 끝냈잖아. 만 스물일곱 살에 감독(배문고)이 됐는데 시행착오가 참 많았지. 제자 중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실업팀에도 가지 못한 선수가 많았어. 내가 죄를 지은 것 같아. 내가 경험이 더 많았다면 잘 살폈을 텐데. 뼈아픈 후회를 많이 하고 나서야 뭔가 알겠더라고. 프로 감독이 되고 심정수·박명환·김동주(이상 두산)·김태균·이범호·류현진(이상 한화) 등 내가 데리고 있던 선수들이 나중에 성공해서 흐뭇하지. 그래서 난 감독이 300승 300패(김 위원장은 통산 980승 45무 1032패)는 해야 된다고 봐. 많이 이기고 져야 배우거든.”

 - 뇌경색을 앓은 지 8년이 지났는데요.

 “젊을 땐 술·담배 좋아했지. 2005년 뇌경색이 왔지만 그래도 감독을 5년 더 했어. 처음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다가 점점 나아졌지. 병과 싸울 때도 야구할 때처럼 포기하지 않았어. 아직도 병원에서 ‘이렇게 좋아지셨느냐’며 놀라. 나보다 먼저 입원했던 사람들이 아직도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어.”

 - 몸은 불편했지만 미국 언론은 ‘강하고 용맹한 감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번 대표팀에 용기를 불어넣어주세요.

 “세 번째 대회인 만큼 선수들이 이제 자신감은 있을 거야. 류현진·김광현·봉중근이 빠진 건 꺼림칙하지만 1·2회 대회 때처럼 기대하지 않은 선수들이 나타날 수 있어. 2회 때 봉중근이 그렇게 잘 던질 줄 알았나? 류중일 감독에게는 ‘초반에 점수를 주더라도 서두르지 마라. 추가 실점을 안 하려다가 더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 감독이 가장 냉정해야 해. 뜨겁게 달려드는 건 선수들과 코치들한테 맡기면 돼.”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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