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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만 피하면 다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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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준호
경제부문 기자

새 정부 조각 인사에 대한 인사 청문회와 검증이 한창인 요즘 국회의사당 기자실엔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국무위원 후보자의 인사청문요청안이 넘어오면서 관련 서류가 속속 도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보자당 수백 쪽에 달하는 서류를 이 잡듯 뒤져야 하는 기자들의 ‘야근’이 며칠씩 이어지고 있다. 최근엔 기자들을 ‘괴롭히는’ e메일이 추가됐다. 이런저런 의혹에 휩싸인 후보들이 해명성 보도자료를 앞다퉈 보내오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20일 오후 1시쯤 판공비 주말 유용 의혹에 대해 해명자료를 보내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으로 재직한 2009년부터 최근까지 사용한 판공비 중 616만원을 주말 등 공휴일에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현 후보자는 “연구기관 특성상 주말·주중 구분 없이 대외활동을 할 수밖에 없어 판공비를 사용했다”며 “의혹 제기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주말사용액 전액을 반납했다”고 밝혔다. 확인 결과 현 후보자가 사용금액을 반납한 건 ‘20일 밤’이었다. 해명자료부터 서둘러 돌리고 나서 돈을 반납한 것이다. 현 후보자는 부총리 후보에 지명된 다음 날인 지난 18일엔 장남에게 아파트를 증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재빨리 증여세(485만1000원)를 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도 비슷하다. 자녀에게 증여한 7000여만원의 예·적금에 대한 증여세를 탈루했다는 의혹이 나오자 최근 증여세 324만원을 납부했다. “세법이 개정된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는 해명을 달았는데 납부 시점을 보니 지난 12일이었다. 박근혜 당선인 측으로부터 후보자 지명 사실을 통보받고 나서 서둘러 세금을 낸 것 같다. 앞서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도 자녀에게 아파트를 증여한 것이 드러나면서 십수 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증여세를 납부했다.

 공직 퇴임 후 로펌에서 거액의 연봉을 받아 전관예우를 이용한 재산 증식 논란에 휩싸인 정홍원 총리 후보자는 21일 “(전관예우로 받은 수입을) 유용하게 쓰겠다”며 야당의 예봉을 피해갔다.

 부동산 투기, 증여, 논문 표절 등의 의혹이 언론을 통해 제기되자 그제야 부랴부랴 사과하고 세금을 내고 받은 돈을 토해내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탄식을 금할 수 없다. 우선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임시방편 식의 대응을 보면서 국회 인사청문회를 피해가려는 교묘한 방법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들이 진정으로 공직자로서의 처신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반성한다면 뒤늦게 밀린 세금을 내는 수를 낼 게 아니라 과감히 후보자 자리를 내려놓는 게 맞다.

최준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