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도 없는데 가입하라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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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금융권의 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 판매가 상품 출시 전부터 과열되자 금융당국이 제재에 착수했다. 일부 금융회사가 다음 달 6일 상품 출시를 앞두고 예약 접수에 나서는 등 불완전 판매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1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재형저축 판매와 관련된 실태점검에 나섰다. 금감원은 주요 은행·자산운용사에 재형저축 준비 사항과 마케팅 현황, 고객 홍보 계획 등과 관련된 자료를 요구했다. 이와 함께 현장 조사를 실시해 재형저축 사전·예약 판매의 위법성 여부와 금리 등의 혜택을 부풀려 설명하고 있는지 등을 따질 계획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재형저축 판매 실적을 연말 포상 및 평가 등에 반영하기로 하는 등 유치 경쟁이 비정상적으로 과열되고 있다”며 “이미 주요 금융회사에 자제를 촉구했으며, 상황에 따라 추가로 제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권혁세 원장도 최근 열린 간부회의에서 재형저축 점검을 강화할 것을 특별 지시했다.

 금감원이 이 같은 제재에 나서는 것은 무엇보다 고객의 피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재형저축은 은행권이 상품 출시를 위한 공동 약관을 마련하고 있는 단계라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나 상품구조를 안내하는 것 자체가 불완전 판매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고객들은 금융회사 간 상품 특성 등을 비교도 해보지 않은 채 금융회사 직원의 권유에 따라 예약판매 접수를 신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나친 금리 경쟁에 따른 재정 건전성 악화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재형저축에 대한 관심이 출시 전부터 뜨거워지다 보니 고객들은 금리에 대한 기대가 크다. 저금리 기조로 예·적금 수신 금리가 3%대로 낮아진 상황에서 고객 유치를 위해 무리하게 고금리를 제시했다간 ‘역마진의 덫’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고객에게 충분한 상품 설명이 이뤄지고 있는지 ▶상품 혜택에 대한 과장·허위 광고는 없는지 ▶가입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무자격자에 대한 스크린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제시한 금리가 적정한지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해 나갈 예정이다.

손해용 기자

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 서민의 재산 형성을 돕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적립식 금융상품(예금·펀드·보험)이다. 올해 초 소득세법이 개정되면서 18년 만에 재탄생했다. 1976년 처음 도입돼 95년 폐지될 때까지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고금리로 일반 근로자·자영업자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77년 한 해에만 가입자 100만 명, 계약금액 3300억원을 돌파할 정도였다. 당시에는 이자 일부를 정부에서 보전해주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금리가 일반 적금의 배가 넘었다. 일부 은행의 재형저축 금리는 연 30%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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