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맛있는 맥주 드문 건 폭탄주 문화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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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폭탄주만 고집해서는 절대로 맛있는 맥주 마시기 힘들 겁니다.” 소믈리에가 와인 전문가라면 맥주업계에는 ‘시서론(Beer Cicerone)’으로 불리는 맥주 전문가가 있다. 미국에서 2007년 생긴 일종의 맥주 전문가 자격증으로 현재 전 세계에서 600여 명이 시서론 자격을 취득했다. 시서론은 맥주 맛 판별부터 양조, 관리, 마시는 법, 서빙 등에 대한 지식을 갖춰 맥주업계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대접받는다.

 OB맥주의 초청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서론 랍 셸먼(36·사진)이 19일 방한해 서울 롯데호텔에서 ‘맛있게 맥주 마시는 법’을 소개했다. 랍 셸먼은 이 자리에서 “한국에 맛있는 맥주가 드문 건 한국인의 폭탄주 문화 때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국 맥주는 밋밋해 소주와 섞어 마신다는 소비자가 많다”고 물었더니 “맥주는 발효 과정을 거친 훌륭한 음식인데 고유의 향이나 맛을 음미하는 한국인이 몇이나 되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맥주는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식으로서 여유를 갖고 마셔야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며 “한국인들도 맥주를 급하게 마시기보다 맛을 음미할 줄 알아야 좋은 맥주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랍 셸먼은 이어 “최근 한국에서 맥주 맛이 없다는 논란이 있는 걸 잘 알고 있다”며 “그만큼 소비자 입맛이 높아졌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맥주를 요구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만큼 현재 라거 일색인 한국 맥주시장도 머지않아 쌉쌀한 맛에 상대적으로 진한 홉향이 나는 에일(상면 발효주) 등으로 다양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에서도 1990년대 초반 홉을 적게 섞어 향도 거의 없고 밋밋한 맛 일색인 ‘맥주의 암흑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이나 벨기에 등에서 수입된 맥주 맛에 눈을 뜬 맥주 애호가들의 다양한 맛에 대한 수요가 분출되자 수십 종의 맥주가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랍 셸먼은 “맥주도 와인이나 사케처럼 맛있게 마시는 법이 따로 있다”고 소개했다. 가장 중요한 게 잔이라고 했다. 맥주를 마시기 전 유리잔을 뜨거운 물에 담가 기름기나 이물질을 완전히 제거하고 차가운 물로 다시 씻어 청결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다음 맥주잔을 45도 정도 눕혀 잔의 중간에 대고 맥주를 따른 뒤, 잔에 맥주가 반쯤 차면 잔을 똑바로 세워 한가운데에 맥주를 따라야 멋진 거품이 생긴다는 것이다. 랍 셸먼은 또 맥주와 잘 어울리는 음식도 추천했다. 그는 “한국의 라거 맥주에는 매운맛의 해물요리나 기름기가 많은 김치파전과 소시지 등이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라거맥주는 청량감과 깔끔한 맛이 뛰어나기 때문에 매운맛이나 느끼한 맛을 중화시켜 준다는 설명이다. 랍 셸먼은 OB골든라거와 함께 상반기 중 호프집을 차리는 자영업자나 하우스맥주 제조자, 맥주 애호가 등을 상대로 맥주 전문 교육프로그램인 ‘시서론 아카데미’를 운영할 계획이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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