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이든 봉쇄든 비핵화 20년 실패” 갈루치의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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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의 1차 북핵위기 이후) 지난 20년간 포용(engagement)이든 봉쇄(containment)든 대북 정책은 동북아에서 북한이 가하는 위협을 줄이는 데 분명히 실패했다.”

 1차 핵위기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를 지낸 로버트 갈루치(67·사진) 미국 맥아더재단 회장의 고백이다. 그는 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빚어진 1차 핵위기 직후 북한과 협상을 시작해 이듬해 10월 제네바 북·미 합의를 타결시킨 주역이다. 미 국무부에서 북핵 정책을 다뤄온 그가 지난 20년간 추진해온 비핵화 노력이 총체적으로 실패했다고 자인한 것이다. 지난 12일 북한이 강행한 3차 핵실험이 분수령이 됐다.

 갈루치 회장은 19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아산정책연구원(함재봉 원장) 주최로 열리는 ‘ 핵포럼 2013’에 참석하기 위해 18일 방한했다.

 우선 지난 20년의 정책에 대해 “실패했다”고 혹평한 이유로 그는 “20년 전 단지 중거리 노동미사일뿐이던 북한이 20년 만에 최대 8기의 핵무기에 쓰일 20∼40㎏의 플루토늄을 축적했다”고 지적했다. 또 “북한은 현대화된 가스원심분리기 농축 프로그램으로 핵물질을 매일 축적하고 있다”며 “북한은 궁극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결합한 강력한 핵무기 프로그램을 지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20년 전 북한은 단지 소량의 플루토늄만 축적한 상태였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보유하지 않았으며 핵실험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3명이 바뀌고, 한국 대통령 4명이 바뀌었으며, 북한 지도자가 두 번 바뀌는 사이 북·미 회담과 6자회담을 통한 대화 노력이 있었고 제재도 수차례 반복됐지만 결국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고 말았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갈루치 회장은 “북한의 (핵 개발로 인한) 도발 행위는 한반도와 주변에 군사력 증강을 초래할 수 있다”며 “핵무기의 존재로 상황을 악화시켜 더 큰 규모의 갈등과 비극적인 살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20년 전에 아무도 묻지 않았던 근본적 질문이 지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그것은 북한의 핵 개발이 방어 목적인지 공격 목적인지 하는 것”이라며 “방어 목적이라면 외교적 해결 희망이 있지만 공격 목적이라면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북핵 해법으로 갈루치 회장은 “최고의 해결책은 체제 유지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인식하고 한·미·중 정부가 대화 노력을 하되 군사적 준비태세를 갖추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또 ▶강력한 한·미 동맹 ▶중국의 역할 ▶충분한 국내 정치적 지지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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