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산] 가파른 눈길은 지그재그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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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의 백미는 역시 겨울철 흰 산에 있다. 그러나 눈 덮인 산에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심설을 뚫고 오르는 러셀(Russel)과 눈사태는 겨울 산에서 겪는 어려움 중의 어려움이다. 눈의 위험을 모르고 겨울 산에 오른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헤치며 전진하는 러셀은 체력 소모가 클 뿐 아니라 비탈을 가로질러 나갈 때는 눈사태를 일으켜 목숨마저 위태롭게 한다.

지표면을 약간 덮을 수 있는 1㎝ 정도 눈의 1㎡ 무게는 2㎏이니,1m면 2백㎏이 나간다. 또한 1백㎝ 적설량이 1백㎡을 덮으면 20t의 무게가 된다. 물기에 젖은 습설은 10배의 무게가 된다.

눈사태는 충격, 기온 상승, 눈 아래의 땅이 미끄러울 때 일어나며 30~40도 경사에서 자주 발생한다. 눈사태는 해마다 같은 지형에서 되풀이 된다. 산에 들기 전 이런 장소가 어디인지 알아두고,이런 곳에서는 한 사람씩 간격을 두고 움직여야 한다.

국내 최초의 설화(雪禍)는 1969년 2월 설악산 건폭골에서 발생했다. 깔대기 모양의 사태 지형에서 열명의 젊은 산악인이 운명을 달리했다. 뒤이어 75년 2월 설악산 설악좌골에서 두번째 산사태 사고가 발생해 세명이 숨졌다.

두 차례의 설화는 가슴 아픈 교훈과 값비싼 경험을 남겼다. 87년 건폭골에서 18년만에 재현된 눈사태와 98년 1월 토왕골에서 13년만에 되풀이된 사태로 십수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87년 사고는 비행기의 음속 돌파음이 눈층에 충격을 준 것이 원인이었다.

눈길을 헤쳐 길을 뚫는 러셀에 대해 알아보자. 이는 제설차를 고안한 미국인 러셀의 이름을 붙여 만든 등산 용어다. 눈 높이가 발목 이하일 때는 걷듯이, 무릎 이상이면 무릎으로 다지면서 길을 뚫어야 한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를 때는 지그재그로 올라야 훨씬 수월하다. 지형을 살피면서 눈이 적게 쌓인 곳을 골라 눈길을 헤쳐 나가야 체력소모가 적다. 계곡길보다 바람부는 능선길과 바위지대는 눈도 적고 걷기에 좋은 견설(堅雪)로 이루어져 있다. 러셀할 때 등산용 스틱 두 개를 사용한다면 체력소모를 줄일 수 있으며 몸의 균형 유지가 수월하다.

적설 산행에서 지켜야 할 수칙은 체력의 안배. 보폭은 평상시보다 좁게 하고, 불필요한 동작은 줄인다.

심설 등산을 할 때 면 종류의 청바지 차림은 자살행위와 같다. 살을 에이는 추위 속에서 옷이 젖으면 저체온증이나 동상에 걸리기 쉽다. 방수.방풍.발수.보온 등의 복합적 기능을 갖춘 소재의 의류가 필요하다.

방수 덧바지.재킷.덧 장갑.스패치는 필수 장비며 여벌의 장갑도 준비한다.

열량 높은 행동식도 휴대해야 한다. 눈은 무섭다. 하지만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면 북풍한설마저 즐거울 것이다.

이용대 코오롱 등산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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