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32조원 규모 ‘오일 빅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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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석유 흐름의 거대한 줄기 하나가 유럽에서 아시아로 방향을 틀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 생산업체인 러시아 로스네프트가 중국 석유가스집단공사(CNPC)로부터 최대 300억 달러(약 32조5000억원)를 차입하는 조건으로 러시아가 중국에 공급하는 석유 물량을 현재의 2배로 늘리는 계약이 진행 중이라고 로이터통신이 14일 보도했다. 두 회사 모두 사실상 국영기업이므로 국가 간 계약으로 볼 수 있다. 로이터는 “세계 최대 에너지 공급자와 소비자 간 거래”라고 평가했다.

  계약이 마무리되면 중국은 러시아산 석유의 최대 수입국이 된다. 현재는 러시아가 중국에 하루 30만 배럴(연간 1500만t)의 원유를 공급하고 있다. 로스네프트는 새 사업을 벌일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지난해 말 인수를 발표한 러시아 제3위 석유회사 TNK-BP 지분의 완전 매입을 위해선 400억 달러가 추가로 필요하다. 매입이 완료되면 로스네프트는 미국의 엑손모빌을 제치고 세계 최대 석유 생산업체로 올라선다. 엑손모빌과 공동 추진 중인 북극해 유전 개발과 정유 현대화 작업에도 각각 수백억 달러를 쏟아부어야 한다. 3조30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를 가진 중국은 로스네프트에 매력적인 물주다. “투자처 다변화를 꾀하는 중국 역시 이 계약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석유 공급을 두고 러시아와 중국을 대표하는 두 업체가 빅딜을 벌인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양측은 2005년 양국을 잇는 송유관을 건설하고 중국에 원유를 공급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재계약 때 원유 운송요금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당시엔 러시아가 느긋한 입장이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 확보에 목말랐던 반면, 러시아는 유럽이란 든든한 시장이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역전됐다. 셰일가스 개발 등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가 다변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석유·가스 가격을 두고 연일 러시아에 불만을 터뜨리며 수입 다변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앞으로 더 많은 에너지 자원을 아시아로 보내겠다”고 맞불을 놨다. 러시아는 향후 석유 수출량의 최대 15%를 유럽에서 아시아로 돌릴 작정이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버금가는 대아시아 석유 수출국이 된다. 러시아는 중국행 송유관 외에 동북아 시장을 겨냥해 지난해 말 동해의 나홋카에 이르는 4739km의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ESPO)’을 개통했고,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라인 건설도 꾀하고 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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