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구주류측 반격 '살생부' 수사 의뢰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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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신.구주류 간 갈등이 대결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20일은 민주당이 창당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당 분위기는 험악했다. 신주류 측의 인적 청산 공세에 시달려온 구주류 측이 살생부 파문을 계기삼아 대반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한화갑(韓和甲)대표는 노무현 당선자와 양당 총무 회동에 대해 "당에서 미리 알고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지도부가 소외된 데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것은 예고에 불과했다.

정균환(鄭均桓)총무가 "당선자 의중을 잘못 안 것 같다"는 이상수(李相洙)사무총장의 지난 17일 발언을 거론하며 "신주류와 구주류를 분류해 구주류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혼란을 부추기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韓대표가 직격탄을 날렸다. 韓대표는 "'당선자의 의중'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당선자가 강조한 당정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며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의장 분위기가 싸늘해졌고, 회의는 비공개로 이어졌다. 비공개 회의에선 살생부 파문의 처리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였다.

이훈평(李訓平)윤리위원장이 "수사를 의뢰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자 李총장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수사 의뢰나 고발을 의결하는 건 모양이 좋지 않으니 당 윤리위에 조사를 지시했다는 정도로 하자"고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李총장의 제의는 "언론 보도로 이미 당내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가 된 만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鄭총무 등의 강경론에 밀려 재발 방지를 위해 사법기관에 고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구주류 측의 공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鄭총무는 이날 오후 SBS 라디오에 출연, 살생부에 대해 "해당행위이며 히틀러.나치시대, 스탈린시대에도 없었던 일"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구주류 측 공세에 대해 신주류 측 인사들은 "당 개혁에 대해 뭔가 잘못 이해하는 것 같다"고 반박했다.

이재정(李在禎)의원은 "당 개혁은 특정인을 배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게 아니다"며 "다 함께 힘을 모아 개혁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경(李美卿)의원은 살생부 파문을 수사 의뢰로 끌고간 데 대해 "당내 문제를 외부 수사기관으로 확대한다는 건 뭔가 잘못 판단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신주류 측 대표인사인 정대철(鄭大哲)최고위원은 창당 3주년 기념 축사에서 "여야와 계층.세대를 뛰어넘는 새 정치를 펼쳐야 하며 당이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내에선 '여야를 뛰어넘는'이란 대목을 놓고 신당 창당을 의미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됐다.

대선 후 민주당 내 주도권을 잡기 위한 내부 갈등은 이제 세(勢)대결 국면으로 옮겨가는 기류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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