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혼란스런 공적자금 논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다. 그런데 공적자금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을 보면 겉보기엔 멀쩡한 사람들이 삐뚤어진 얘기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단순히 뭘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회수율 낮은것 탓만 하나

구조조정에 사용된 1백50조원의 공적자금 대부분은 국민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전망들이 난무하고 있고,얼마 전에는 7조원이 넘는 자금이 도둑맞았다고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공적자금을 직접 빼돌린 것은 아니라는 해명이 뒤따랐지만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찜찜함이 가시지 않는다. 무엇이 맞는 말인지는 모르더라도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만은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자세를 탓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의 근본은 공적자금에 대해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우선 대표적인 사례로서 국민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적자금의 회수율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들 수 있다. 공적자금은 구조조정에 쓰라고 조성된 비용의 개념이다. 따라서 어떤 평가를 내리려면 자금의 성과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비용 20을 쓰고 효과가 40인 경우가 10을 쓰고 15의 효과를 보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소위 '최소비용의 원칙'이라는 것도 이런 식으로 해석해야 한다.

과거의 산적한 금융부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금의 상당 부분은 어차피 회수가 어려운 용도로 쓰일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경우 엄청난 돈을 퍼붓고도 구조조정이 왜 부진하느냐 하는 비판은 할 수 있어도 회수율이 낮은 것을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측면을 정부 스스로 떳떳하게 규명하지 못하니까 바깥에선 마치 회수율은 1백%가 돼야 하는 것처럼 떠들어대는 것이다.

여기에 발끈해 공적자금이 없었으면 외환위기에서 못벗어났다는 식의 초등학생 논리를 펼치는 정부 주변 사람들 역시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이런 목소리 큰 선무당들 때문에 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소신있게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마저 위축되는 것이다.

요컨대 공적자금 평가의 관건은 자금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됐는가이고, 이것이 궁극적인 국민부담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사실 공적자금과 관련해 정말 걱정되는 것은 정책판단 부분이다.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야기되는 손실은 몇조가 아니라 몇십조원, 아니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제일은행 매각 사례의 경우 사후적으로 손실을 보상해주는 풋백옵션이 은행경영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했을 가능성이 있고 또 이후의 해외매각 협상에 나쁜 선례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차라리 문을 닫고 다른 은행에 인수시켰으면 당장 예금대지급에 비용이 들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조정 효과는 훨씬 더 컸을 것이라는 판단도 가능한 것이다.

정책은 어차피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선택이다. 당시의 판단이 최선이 아니라고 누구를 벌주자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사후평가를 하자는 것이다. 대우채 환매 결정도 무조건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도덕적 해이의 측면을 명백하게 이해하자는 차원에서 따져보자는 것이다.

***투명성 높이기 대책 필요

깨끗한 자금관리와 바른 정책판단을 하려면 무엇보다 정보가 투명하고 충분하게 공개돼야 한다. 회수가 힘든 자금의 내역을 정책 당사자가 아니라 감사원이나 외부 사람들이 추정한다는 것 자체가 한심한 일이다.

아무리 오해라지만 공적자금을 빼돌렸다는 황당한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만큼 정보 공개가 미흡했다는 상황적인 방증이다. 공적자금의 투명성을 높이려고 만든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활동이 투명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나 사용된 자금의 평가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차환발행 얘기가 들리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야당이 청문회 하자면 떳떳하게 나와 사실을 말하는 것이 공직자의 진정한 자세이고 또 그래야만 억울하게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잘 하려면 정부부터 떳떳해야 한다. 국민도 세금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제발 제대로 써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 경제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