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한을 지닌 이는 홍길동뿐만이 아니다. 지금이 양반과 노비가 존재하는 조선시대도 아니고 대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일까.
우리 민법 제844조에 따르면 ‘처가 혼인 중 포태한 자는 부의 자로 추정되고 혼인성립일로부터 200일 후 또는 혼인관계종료일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한 자는 혼인 중 포태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위와 같은 친생자 추정은 매우 강력한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친생 부인의 소’를 거치지 않으면 이를 번복할 수 없다. 따라서 만일 처가 혼인 중 포태한 자가 사실 그의 남편의 자가 아닌 경우 예컨대 불륜관계에 있는 사람 사이에서 출생한 자는 본의 아니게 홍길동과 같은 처지가 되고 만다.
즉 처가 혼인 중 포태하면 일단 법률상 남편의 자로 출생신고를 하게 되므로 자녀는 마치 홍길동처럼 진정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 판결을 받아 재차 혼인 외 자녀로 출생신고를 하는 방식으로 가족관계 등록부를 정정해야 하니 결국 부정한 관계에 의해 생긴 자녀인 경우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거나 허위로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게 된다.
생각해보라. 내연남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출생한 후 출생신고를 하게 되면 법률상 남편의 자녀로 가족관계 등록부에 공시가 된다는 것인데 그 누가 자신의 불륜이 발각돼 이혼 혹은 간통고소를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출생신고를 할 수 있을 것인지 말이다.
위와 같은 경우 남편과 서둘러 이혼한 후에 다시 내연남과 재혼해 출생신고를 하면 되는 것 일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남편과 이혼하고 내연남과 재혼한 후에 자녀를 출산한 경우에도 자녀를 포태한 시점이 전남편과 혼인기간 중이었기 때문에 역시 전 남편의 자녀로 추정돼 그의 자로 출생신고를 하게 된다. 따라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이혼한 전 남편을 상대로 새삼스럽게 친생부인의 소 혹은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도가 홍길동에게 한을 심어준 것처럼 현대 역시 민법의 친생추정조항 및 신분공시제도가 죄 없는 자녀의 복리를 위협하는 상황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출생과 동시에 자녀의 아버지를 획일적으로 확정해 자녀가 안정된 법적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측면에서는 지극히 타당한 법규정일 것이나 예외적으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명확히 증명할 수 있는 경우라면 곧바로 생부로 출생신고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된다.
유유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