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미 국무 클린턴 … “미 역사상 가장 막강한 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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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오른쪽)이 마지막 출근일인 1일(현지시간) 토머스 나이즈 부장관과 악수를 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 로이터=뉴시스]

“이젠 전화교환원을 통해야 여러분과 전화를 할 수 있다. 그래도 그리울 때면 여러분에게 전화를 하겠다.”

 마지막 이임인사를 하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마치 개선장군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나는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데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우리가 세운 목표와 방향이 옳았다는 확신을 갖고 떠난다”고 말했다. 국무부 청사 로비를 가득 메운 직원들은 박수와 환호로 클린턴 장관을 보냈다. 일부 직원은 대통령선거 출마를 의미하는 “2016년”을 연호하기도 했다.

 2월 1일(현지시간)을 기점으로 미국 국무부의 홈페이지 화면이 바뀌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전 국무장관’이 됐고, 존 케리가 ‘68대 국무장관’으로 홈페이지 첫 화면에 등장했다.

 하지만 클린턴 전 장관이 남긴 그림자는 짙고도 넓다. 4년의 재임기간 중 전 세계 112개국을 방문해 역대 미 국무장관 가운데 가장 많은 나라를 방문하는 기록을 세웠다. 종전 기록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98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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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지 뉴스위크는 1일자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막강한 여인’이라는 제목과 함께 클린턴을 표지모델로 선정했다. 공화당 상원의원인 존 매케인은 “비록 정적이었지만 그가 한 일에 대해선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부인 미셸을 제외하곤 공동인터뷰를 하지 않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클린턴 전 장관과 함께 CBS 대담프로인 ‘60분’에 출연하는 우정을 보였다.

 4년 성적표를 정리하는 미 언론들의 분석은 대부분 칭찬 일색이었다. 국무부 업무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도입해 ‘스마트 외교’라는 용어를 만들고, 여성 인권과 에이즈 퇴치 운동 같은 이슈를 국무부에서 주도한 것도 클린턴의 작품이었다. 물론 일부 비판론자는 “전 세계를 누빈 화려한 국무장관이었지만 ‘이거다’ 하고 기억에 남는 업적은 없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대 국무장관 중에서 힐러리 클린턴만큼 국무부의 위상을 격상시킨 사람은 없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클린턴 개인적으로도 국무장관 4년은 흑자였다. 2008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오바마에게 패한 뒤 클린턴의 선거자금 계좌는 2090만 달러 적자였다. 하지만 지지자들의 후원으로 그 빚을 모두 갚았고, 현재 계좌에는 20만4000달러가 쌓여 있다.

 무엇보다 오바마를 도와 2인자 행보를 하는 동안 정치적 자산을 크게 불렸다. 1월 31일 미 언론들과의 연쇄 인터뷰에서 클린턴은 2016년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자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지지자들은 차기 대선 출마를 위한 수퍼팩(정치행동위원회)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와 ABC 방송이 실시한 차기 대선 후보 호감도 조사에서 클린턴은 67%로 조 바이든 부통령(48%)을 크게 앞섰다. WP는 “공화당원의 40%도 클린턴에게 호감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시리아 시민군 무장 지원 시도= 클린턴 전 장관과 성 추문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한때 시리아 시민군을 무장훈련시키는 방안을 추진했다고 NYT가 2일 보도했다. 지난해 여름 퍼트레이어스가 아이디어를 냈고, 클린턴은 적극 지지 의사를 밝혔다.

클린턴과 퍼트레이어스는 백악관에 이 계획을 소개했지만 위험요소가 너무 크다고 판단한 백악관이 퇴짜를 놨다고 NYT는 익명의 관리 말을 인용해 전했다. 무기가 시민군 세력에 가담한 알카에다 연계조직 등에 흘러가는 것도 위험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한창 재선을 위해 선거운동을 벌이는 때라 보다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이유였다. 미 행정부 내에서는 대선 이후 이 문제를 다시 쟁점화하려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퍼트레이어스가 스캔들로 낙마하고 클린턴이 뇌진탕으로 입원하면서 몇 주를 그냥 놓쳤고, 클린턴 퇴임과 함께 이 문제는 그냥 묻혀 버렸다”고 NYT는 전했다.

박승희 특파원,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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