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인을 노사분규 볼모로 삼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노조원들이 지난해 12월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합원 최강서씨의 시신이 든 관을 들고 지난달 30일 부산 영도 조선소에 진입한 것은 상식 이하의 행동이다. 최씨가 노조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40여 일이 지났음에도 노사분규 와중에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이날 장례식장에 그간의 장례비용 7000여만원을 지급한 뒤 관을 찾아 메고 조선소로 진입해 농성에 들어갔다. 회사 측이 조합원들을 상대로 제기한 158억원 손해배상소송을 철회하라는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최씨는 2011년 2월 정리해고됐다가 지난해 11월 노사합의에 따라 복직했으나 일감이 없어 복직 이튿날부터 무급 휴직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 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이른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관을 들고 시위·농성을 하는 것은 망자를 존중하는 우리 풍속과 상식으론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

 노조 측은 “천막 농성장으로 시신을 옮기려고 했는데 경찰이 막았고, 그 과정에 서문이 갑자기 열려 150명 정도가 우발적으로 시신을 들고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을 농성장으로 옮기려 한 것 자체가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는 고인을 볼모로 삼아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극한투쟁으로 비친다. 노조의 주장대로 관이 뜻하지 않게 조선소 안으로 옮겨졌다면 지금이라도 외부로 옮겨 제대로 된 곳에 안치하는 게 옳다. 아울러 회사는 장례절차를 비롯한 현안에 대해 노조와 대화에 나서기 바란다.

 한진중공업지회는 2003년 10월에도 손배소 철회, 임단협 등을 요구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주익 당시 지회장의 관에 드라이아이스를 채운 뒤 한 달 동안 크레인 농성을 하며 시신 시위를 벌여 손배소를 철회시킨 전례가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인간의 죽음을 노사분규에 이용하는 무도한 일이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장례를 치르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바란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