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도 못한 환급금 800만원 회사 서류엔 줬다고 기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서울의 택시회사에서 일하다 퇴직한 김상도(가명)씨가 모아온 월별 입금카드를 자료로 제시하며 업주가 매출을 얼마나 누락시켰는지 설명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3년5개월 동안 월급명세서는 구경조차 못 했어요.”

 지난해 5월까지 서울의 한 택시회사에서 일했던 김상도(가명·61)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월급날이면 세부 내역 없이 총금액만 달랑 적힌 월급 봉투를 받아왔다. 정부가 택시기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부가가치세를 돌려주고 있다는 사실은 퇴직한 뒤에야 알게 됐다. 퇴직금을 줄 수 없다고 버티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구청에서 서류를 떼보니 주야간 교대로 일한 동료와 자신 몫으로 800만원이 넘는 부가세 환급금이 지급된 것으로 나와 있었다. 물론 김씨는 구경도 못해 본 돈이었다.

 회사의 불법 행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씨는 한 달에 26일씩 꽉 채워 근무했지만 회사 서류엔 근무일수가 많게는 10일씩 빠져 있었다. 회사가 4대 보험금이나 세금을 적게 내려고 허위 장부를 만든 것이다. 김씨가 이런 어이없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은 지난 3년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의 매출 현황을 일기처럼 기록해 온 덕분이다. 지난해 지방노동청 조사 과정에서 김씨가 이런 기록을 들이밀자 회사 경리 담당자는 결국 “서류는 세무서 신고용으로 다 가짜”라고 실토했다.

 반년 넘게 회사와 싸워온 그는 “택시기사 편은 없고 다 업주 편인 것 같다”고 했다. 지방노동청 담당 조사관은 김씨와 택시회사 관계자를 세 차례 불렀지만 양측 주장만 되풀이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참다 못한 김씨가 담당자를 바꿔달라고 진정을 넣고서야 두 달 만에 조사가 시작됐다.

 김씨는 택시기사로 일하기 전 20여 년간 의류 유통업에 종사한 사업가였다. 그는 “내가 왜 의류업을 했나 싶었다”며 “택시회사는 돈 버는 수단으로는 최고”라고 말했다. 저임금으로 기사들을 착취하면서 정부 지원은 지원대로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업주가 정부 지원만 믿고 ‘택시 다 놀려도 괜찮으니까 기사들 요구는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김씨는 택시법에 대해 “법 통과 안 되면 파업하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과연 기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지원해주는 각종 지원금, 보조금 혜택만이라도 업주가 제때 잘 지급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탐사팀=고성표·김소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