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5년 가택 연금 민주화 투쟁 … 버마의 영웅 ‘The Lad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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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웅산 수치 평전
피터 폽햄 지음
심승우 옮김, 왕의 서재
744쪽, 2만5000원

역사적 소명이 부과된 위인에겐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다. 20~21세기 4대 위인을 꼽아보라면 마하트마 간디·마르틴 루터 킹·넬슨 만델라, 그리고 아웅산 수치를 들겠다.

 수치도 미래를 미리 봤기에, 1978년 영국의 티베트학 학자 마이클 에어리스에게 시집갈 때 딱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조국이 그를 부르게 되면 가야 하니 이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수치는 버마 독립전쟁의 영웅인 아버지와 붕어빵처럼 닮은 모습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아웅산 장군은 수치가 두 살 때 암살됐다. 수치는 외교관인 어머니를 따라 인도에서 성장했으며 비록 공부는 못하는 편이었지만 옥스퍼드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유엔에서 하급 국제공무원으로 근무하다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다.

 88년 평범한 가정주부인 그를 역사가 불러냈다. 어머니 병환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했다가 버마 민주화 운동의 소용돌이에서 중심에 서게 됐다. 버마 군부정권은 15년 동안 그를 가택 연금했다. 남편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다. 91년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도 가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집안의 가구를 내다 팔았으며, 영양 부족으로 머리가 빠졌다. 불교 신앙으로 버텼다.

 세계는 수치의 외로운 투쟁을 지지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나의 영웅’이라 부른다. 국민은 수치를 ‘귀한 그분(The Lady)’라고 불렀다. 그의 이름을 부르다가 어딘가로 잡혀갈까 봐, 그리고 감히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없어서였다. 군부는 수치가 ‘서구의 앞잡이’에 불과하다고 네거티브 홍보를 했으나 국민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2010년 버마 군사독재정권은 그를 가택연금에서 풀어줬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수치는 민주화 세력을 이끌고 있다. 수치를 ‘나무 위에 올려 놓고 흔들겠다’는 꼼수인지, 민주화 의지가 실제로 있는지 지금은 군부의 의도를 아무도 모른다. 아직 끝나지 않은 수치의 도전이 어떻게 결실을 맺을지도 알 수 없다.

 이 책은 수치에 대한 이런 저런 궁금증을 날려버린다. 심승우 고려대 연구교수가 우리말로 옮겼는데, 번역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술술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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