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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중독 최선의 해독제는 종이 책·신문 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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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얼마 전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영국 신문 파이낸셜타임스가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이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한 기사였다. 여러 가지 눈길을 끄는 사례가 소개됐는데, 그중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이용한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구팀의 실험이었다. 책을 건성으로 읽을 때와 집중해서 읽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MRI를 통해 비교했더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이 1814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맨스필드 공원』을 그냥 죽 훑어보는 식으로 대충 읽게 했을 때는 주의력과 관련한 뇌 부위만 활성화됐지만 집중해서 읽게 했을 때는 주의력뿐만 아니라 신체 동작이나 촉감과 관련한 뇌 부위도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내용을 분석하며 주의 깊게 책을 읽을 때는 뇌만이 아니라 신체까지 스토리 구조 속으로 몰입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화면을 이용한 글 읽기와 종이로 된 인쇄물을 이용한 글 읽기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주장이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텍스트를 읽을 때는 집중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건성으로 읽게 된다. 그 결과 같은 텍스트를 읽어도 사고력의 폭과 깊이가 종이로 읽는 것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픽셀(pixel·화소) 읽기’와 ‘프린트(print) 읽기’의 차이가 바로 이것이란 얘기다.

 디지털 스크린을 통해 글을 읽다 보면 인간의 두뇌 회로 자체가 그쪽으로 길들여져 인지 능력과 종합적 사고 능력이 저하된다는 지적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저명한 기술전문가인 제이런 래니어 박사는 ‘픽셀 읽기’는 인지 방식의 폭을 축소시켜 인간의 두뇌를 ‘모노 브레인(mono brain)’으로 만든다고 경고한다. 농지에 한 가지 작물만 오래 재배하다 보면 토양이 영양소의 다양성을 잃게 돼 결과적으로 수확량이 감소하는 것과 같은 이치란 것이다.

 인간의 창의력과 사고력의 산물인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다시 인간의 지적 능력을 감퇴시킬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이미 기억력은 확실히 퇴화했다. 터치 몇 번이면 무엇이든 찾을 수 있으니 굳이 힘들여 외울 필요가 없다. 기억 능력을 스마트폰에 아웃소싱하고 살다 보면 두뇌의 지식 저장 창고가 점점 비게 된다. 당연히 종합적 사고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여론조사기관인 트렌드모니터가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가장 줄어든 활동이 독서(41.5%)라고 한다. 그 다음이 신문 읽기(40.2%)였다. ‘픽셀 읽기’가 늘면서 ‘프린트 읽기’가 줄어든 것이다. 뭐든 지나치면 탈이 나게 돼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게 중용이고 균형이다. 세계에서 스마트폰 보급률이 가장 높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프린트 읽기’를 ‘픽셀 읽기’의 해독제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글=배명복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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