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맛 떨떠름한 중국특사 방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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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호 29면

장즈쥔(張志軍)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예방한 뒤였다. 한국의 유명한 중국 전문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관전평’을 내놓았다. 한마디로 특사의 격이 안 맞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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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지난해 12월 북한에는 정치국 위원이자 부총리급인 리젠궈(李建國)를 파견하며 당 중앙위원에 재선된 왕자루이(王家瑞) 대외연락부장을 함께 보냈다. 반면 한국엔 이제 막 중앙위원에 선출된 장즈쥔을 보냈다. “이 정도면 박 당선인의 비서실장을 만났으면 딱 맞을 격이다. 중국의 차관급 인사가 와서 한국의 조야와 재계를 두루 불러모아 만나는 건 뭔가 잘못됐다.” 그 전문가의 결론이다.

이 발언에 한국의 내로라하는 중국 전문가 40여 명이 우르르 페이스북에서 ‘Like(좋다)’를 눌러 동감을 표시했다. 이들 상당수는 한국에서 잘 알려진 오피니언 리더다. 그들이 보기에도 이건 뭔가 개운치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 측 시각은 다르다. 중국의 관방학자에게 물었다. 첫 반응은 이랬다. “그래? 그럼, 누굴 보내지? 장즈쥔 빼고는 없는데….” 다른 중국 측 인사들의 시각을 종합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장즈쥔은 한국을 잘 아는 ‘적임자’라는 것이다. 그는 매년 열리는 한·중 고위급 전략대화를 중국 쪽에서 총지휘한다. 또 외교 사령탑인 다이빙궈(戴秉國·부총리급) 인맥의 핵심이자 올 3월 외교부장이 될 게 거의 확실시된다. 중국 외교부엔 7명의 부부장이 있다. 그중 장즈쥔은 직급이 가장 높은 ‘상무 부부장’이다. 한마디로 장즈쥔은 시진핑(習近平) 시대의 외교부장 자리를 예약해 놓은 상태다. 지난해 12월 중국이 주중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외교정책을 브리핑한 자리에선 주역이었다. 요약하면 시진핑은 한·중 양국의 새 정권 출범 시기에 자기의 외교부장을 사절로 보낸 셈이다. 게다가 장즈쥔은 차관급이지만 외교부 당서기직을 맡고 있다.

둘째, 장즈쥔은 북핵 문제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베이징의 한 서방 외교관은 ‘양제츠(楊潔篪) 외교부장이 미국통인 데 비해 장즈쥔은 개인적으로도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는 북핵 6자회담을 직접 조율해 온 핵심 인물일뿐더러 북한이 지난해 초 ‘인공위성 발사’를 발표했을 때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를 불러 ‘우려’를 표명했다.

셋째, 한국에 북한보다 낮은 급의 인물을 특사로 보냈다는 비판은 형식상 맞지만 내용에선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진영에 속해 있는 북한·라오스·베트남 등에 전통적으로 고위급 인사를 보내 왔다. 하지만 요즘엔 다른 나라들처럼 ‘당(黨) 대 당’이 아닌 ‘국가 대 국가’의 정상적인 외교를 하려는 방향으로 틀고 있다. 이런 ‘전통’을 급작스레 깨면 약소국가들의 자존심을 건드릴까 봐 종래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에 보낸 리젠궈는 후진타오 시절에 커리어를 쌓은 이여서 ‘준(準)은퇴자’라고 설명한다.

중국 측의 이런 주장에도 나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외교는 내용 못지않게 격과 형식이 중요하다. 중국은 남북한 등거리외교를 펼치며 북한에 상대적으로 고위급 인사를 파견해 왔다. 그러나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고려할 때 그런 틀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 예컨대 중국 지도부가 이번 특사 파견 때 한반도 전문가인 장더장(張德江) 정치국 상무위원을 단장, 장즈쥔을 실무 책임자로 파견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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