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서 깨달은 생명의 소중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젊음의 통과의례 격인 소설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하나의 상징이다. 저 아득한 사춘기에는 껍질을 깨는 아픔과 고통의 상징이요 나이가 들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젊음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의 상징이다.

헤세가 정원 가꾸기에 대해 쓴 산문과 시, 직접 그린 수채화,그리고 정원을 돌보는 모습을 찍은 몇 컷의 흑백사진을 모아 놓은 『정원일의 즐거움』은 그런 헤세를 문명비판론자이자 반전(反戰) 주의자로도 넓혀주고 있다.

"정원을 가꾸는 것은 하나의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라고 한 헤세는 일평생 정원 가꾸기에 매달리며 한때 포도 농사로 생계를 이어갈 정도였다.

책에는 우선 자연의 생명력을 담뿍 느끼게 해주는 글귀와 사진이 가득하다.

낙옆이 타며 나는 매캐한 연기에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은 사진이며 고독하고 의연하게 서 있는 나무에 대한 감상에서 아침의 햇살,푸른 산줄기, 장미.수선화.재스민의 향기에 대한 묘사 등등.

어떤 구절은 인생에 대한 잠언적 경구로 읽히기에 무방하다. 예를 들어 톱날에 잘려나간 나무를 바라보며 헤세는 그 나무에 배어 있는 거친 숨결과 역사를 떠올린다.

"굵은 나이테가 만들어진 해는 무성하고 화려하게 피어났던 때다. 나이테가 가늘었던 해도 있었다. 그해 나무는 거센 공격을 이기고 폭풍우를 이겨낸 것이다. 젊은 농부들은 모두 알고 있다. 가장 강인하고 가장 고귀한 나무가 어떤 것인지를."

그러나 이 책에서 헤세가 느림의 미덕을 찬양하고 대안적 삶의 양식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음을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다. 녹색당 이념의 헤세 버전이라고 할까.

"유독 인간만이 질서정연한 자연의 순환에서 제외돼 있다는 것, 사물의 불멸성에 만족 못하고 한 번뿐인 인생인양 자기만의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을 통렬히 고발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