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2차전지 세계 1위’ 비결은 무한도전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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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박상진
삼성SDI 사장
한국전지산업협회장

21세기의 눈부신 정보통신(IT) 모바일 혁명의 한가운데에는 재충전이 가능한 2차전지가 있다. ‘모바일 기기의 심장’으로 불리는 리튬이온 2차전지의 영역은 스마트폰·태블릿·노트북PC 등 IT 제품에서 전기자동차·전력저장장치(ESS) 등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세계 2차전지 시장은 수십 년간 일본이 사실상 독점해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업 진출 10여 년 만인 2011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전지생산국으로 부상했다. 2006년 18%에 불과하던 세계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하반기 46%까지 늘어나며 일본과의 격차를 확대하고 있다. 대한민국 2차전지는 애플·델·BMW·GM 등 세계 유수의 전자 및 자동차 제조업체에 연간 40억 달러어치가 수출되며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력으로 성장하는 상황이다.

 후발주자로 뛰어든 우리 전지산업이 이처럼 빠르게 성장해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우리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와 노력에 있었다. 아울러 우리 경제가 다양한 전·후방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IT·자동차 등 다양한 수요처가 국내에 있었고,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기존 산업에서 얻은 우수한 기술력도 활용이 가능했다. 마지막으로 관련 산업과 기술의 활발한 융합을 이끌어 낸 우리 정부의 체계적인 산업 육성 전략이 있었다. 특히 우리 정부는 지난 수년간 추진해 온 산·학·연 공동기술개발을 통해 시행착오와 개발기간을 최소화하며 높은 성장을 견인했다.

 2차전지는 탄생부터 쓰임새까지 다양한 산업과 기술의 융합으로 가능했다. 그러므로 미래 또한 융합의 관점에서 만들어 가야 한다. 2차전지는 앞으로 크게 성장할 전기자동차, 신재생에너지, 스마트 그리드까지 신성장 동력 산업의 핵심 요소다. 미래 기술에 걸맞은 고성능 전지를 개발하려면 IT 부품이라는 협소한 관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산업과 폭넓은 융합의 상상력이 발휘돼야 할 것이다.

 특히 2차전지 경쟁력을 좌우하는 소재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산업 간 융합이 더욱 절실하다. 전기차·ESS 등 중대형 전지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성능이 평준화된 소형전지와 달리 중대형 전지는 소재에 따라 성능이 상당 부분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중견기업이 주축이 되어 소재산업을 튼튼히 육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견고하고 건강한 가치사슬(밸류체인)을 구축하는 것은 산업 생태계 전체를 아우르는 융합의 시각 없이는 불가능하다.

 세계의 2차전지 강국들은 일본의 경제산업성, 미국의 에너지부처럼 주무 부처에서 산업 간 융합 로드맵을 수립해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7대 신성장 사업의 하나로 소재산업을 선정하는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을 바탕으로 강력한 경쟁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2차전지와 같은 미래 핵심 융합산업을 효과적으로 육성해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상진 삼성SDI 사장·한국전지산업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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