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의 벽을 허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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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격학습협회의 총책임자인 존 G. 플로어스는 현재 미국 전역에서 약 1백만명의 학생이 이런 형태의 수업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사우스다코타州가 가장 열성적이다. 공립과 사립 및 원주민 부족 학교를 막론하고 사우스다코타州의 모든 학교는 현재 ‘디지털 다코타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다. 따라서 4백80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이 언제라도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할 수 있다. 이 네트워크는 면적이 19만4천3백평방km가 넘는 사우스다코타州 각지의 4백개 건물을 연결하는 4년간의 대규모 작업 끝에 지난해 완성됐다. 일반 시장에서라면 적어도 1억달러는 들었을 것이다. 총수입이 7억달러인 州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다. 그래서 州당국은 복역중인 죄수들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했다.

주지사 윌리엄 잰클로는 사우스다코타州의 작은 마을과 학교들이 급변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원격학습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1990년대 중반 그는 전화·컴퓨터 회사 등 기업체의 기부를 이끌어내 州내 모든 학교를 컴퓨터화하고 모든 州정부 사무실과 도서관에 인터넷을 끌어들이는 운동을 시작했다. 잰클로는 “모든 지역에서, 모든 과목을 위한, 모든 교사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州내 오지의 경우 그런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 그러나 현재 사우스다코타州에서는 가장 작은 학교의 학생들도 프랑스어나 미·적분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주변 수백km 안에 그런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가 없어도 가능하다.

잰클로는 교사들에게 첨단기술 사용법을 가르치는 운동도 시작했다. 그는 교사들을 방과후나 주말에 특별수업에 참가시키는 기존 방식을 거부했다. 교사들이 하루종일 일하고 난 후에는 너무 피곤해 수업에 집중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기술 집중훈련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교사들이 여름 한달 동안 집중적으로 컴퓨터 학습을 받는 것이다. 州당국은 참가 교사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1천달러를 지급하며 참가 교사가 속한 교육구에도 1인당 1천달러씩 지급한다. 州 전체 교사의 약 41%인 약 3천7백명의 교사가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비보그에서 유치원∼12학년 학생들에게 성악을 가르치는 웬디 크리스천슨은 이 프로그램이라면 아무리 기술 쪽에 둔한 사람이라도 컴퓨터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기존의 워크숍에서는 한가지 기술을 배운 뒤 집에 가서 연습하도록 돼있지만 집에서는 짬을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 5일, 하루 8시간씩 오직 컴퓨터에만 전념하다 보면 필요한 것을 전부 배울 수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 첨단기술을 음악 수업에 접목하는 새로운 방법을 습득했다. 예를 들어 파워 포인트를 이용한 음악 데몬스트레이션은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우스다코타州 학부모들은 몰라보게 향상된 자녀의 컴퓨터 실력에 놀라워 하고 있다. 전미(全美) 종묘판매상 협회를 관리하는 데이비드 윌리엄슨(49)은 사업 운영에 아들 라이언의 컴퓨터 전문지식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나는 컴퓨터에 익숙지 않은 세대다. 그러나 우리 아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컴퓨터와 관련된 많은 일에 도움을 준다. 그애가 그런 것을 배우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사우스다코타州의 학교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정보 네트워크는 주로 고속 광대역 라인(T1)에 의존한다. 보통 전화는 초당 5만4천비트를 전송하지만 T1라인은 1백54만비트를 전송한다. 그런 속도는 학습의 거의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일례로 비보그 학교의 웹사이트에는 매일 모든 학급의 숙제가 게재된다. 아파서 결석한 학생은 그날 무엇을 배웠는지, 숙제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교실에서의 컴퓨터 사용과 관련해 학교측은 e메일·채팅방·포르노 사이트의 이용을 금하고 있다. 일부 학생은 그런 규칙쯤은 들키지만 않으면 어겨도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얼마전 한 남자 고교생은 수업이 끝날 무렵 금지된 자료를 내려받았다. 그러나 ‘저장’을 선택한다는 것이 잘못해 ‘월페이퍼’를 선택하는 바람에 내려받은 자료가 컴퓨터 스크린의 배경화면으로 깔렸다. 컴퓨터 교사 아이렌 벤슨은 어느날 아침 화면에 벌거벗은 여성의 사진이 깔린 것을 봤다. 그 일로 그 학생은 컴퓨터 사용권을 박탈당했다.

첨단기술은 비보그에서 이루어지는 학습의 모든 면에 변화를 가져왔다. 철저히 재래식으로 교육하던 기본 과목도 예외가 아니다. 가족·소비 과학(가정학)이라는 과목에서는 모든 8학년생들이 24시간 동안 컴퓨터 아기 인형을 돌봐야 한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나이가 더 들어야 잘 할 수 있는 막중한 책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이 수업의 목표다.

컴퓨터 아기는 마치 진짜 아기처럼 계속 울어대면서 기저귀를 갈아주고, 안아주고, 트림을 시키고, 먹을 것을 줄 것을 요구한다. 아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부모’가 결정해야 한다. 아기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맞혀 해주면 아기는 까르륵거리며 좋아한다. ‘부모’는 컴퓨터 아기의 반응을 전달해주는 팔찌를 찬다. 다음날 교사는 컴퓨터 기록을 보고 학생이 얼마나 부모 노릇을 잘했는지 평가한다.

‘하루 부모’ 역을 해본 존 앤더슨(14)은 컴퓨터 아기와 밤새 씨름한 다음날 쏟아지는 하품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아기가 울어대는 바람에 한숨도 못잤다고 투덜댔다. 낮에는 아기가 해달라는 게 너무 많아 숙제도 하는둥 마는둥 했다. 게다가 제일 좋아하는 TV 프로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온통 난리였다. “나는 아직 아기를 돌볼 준비가 안됐다는 걸 분명히 알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축구나 황소 타기, 인터넷 서핑 등 그보다 좀더 쉬운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1백여년 전 이 황량한 시골 지방은 보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새 터전을 찾아나선 개척자들의 마차 행렬로 유명했다. 21세기의 개척자 행렬은 사이버 공간을 누빈다. 사우스다코타州의 주민들은 다시 행렬의 선두에 서고 있다.

▷교실 속의 인터넷 혁명

신세계가 열린다.
교실의 벽을 허문다.

▷미국의 교사·발명가·기업가들이 말하는 서기 2025년의 교실

애플사 CEO 스티브 잡스
교육전문가 린다 달링-해먼드
MS 회장 빌 게이츠
IT 투자자 존 두어
상원의원 마리아 캔트웰
교사 브랜던 로이드
발명가 대니 힐리스
투자자 허브 앨런
혁신가 시모 페이퍼트
교육개혁가 데버러 마이어
컨설턴트. 전하원의장 뉴트 깅그리치

Dirk Johnson 기자
자료제공 : 뉴스위크 한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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