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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유산 vs 박근혜의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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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지금 시중 모임에 가보면 스스로 자문(自問)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기가 어렵지 않다. 과연 박근혜 정부가 과거 정부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묻고 있는 모습들이다. 물론 이런 모습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어느 정권이고 이전 정권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우선 새롭게 출발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이전 정권의 실패로 큰 실수만 없으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열린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자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작보다 결과가 더 나쁘기 때문이다. 특히 외교 안보가 그랬다. 정권 초기의 장밋빛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늘 안보불안과 남남갈등이 정권 말기의 외교 안보 현주소였다. MB가 박근혜 당선인에게 물려주는 유산이기도 하다.

 MB 외교 안보의 골격은 ‘한·미 동맹 복원’과 ‘비핵 3000’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중국의 부상으로 야기된 한반도와 동북아의 불안정한 정세에 비추어 보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과 동지의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대화보다 강압을 선호하고, 한·미 동맹 일변도로 중국이나 북한 문제를 도외시한 외교 안보의 후유증은 결코 적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박 당선인의 외교 안보 지침은 ‘신뢰와 균형’이다. 안보와 교류협력, 억지와 협상의 균형을 통해 요동치는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헤쳐 나가려는 전략이다. 작금의 이른바 ‘멀티 파트너’의 세계에서 그 방향설정은 옳아 보인다. 멀티 파트너의 세계는 단순한 적대관계의 세계가 아니라, 경쟁하면서도 상호 의존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안보적 측면과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들이기 위한 포용적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래서 경직된 이분법적 MB의 유산에서 벗어나는 것이 선결과제다. 단호하면서도 유연한 외교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능하고 세련된 막강 외교 안보팀을 구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런데 ‘신뢰와 균형’의 전도사로 ‘원칙 있는 대북포용’ 정책을 주창해온 최대석 교수가 인수위에서 사퇴했다. 좌우에서 신망받던 그다. 이를 보고 국민들이 자문하고 있다. 과연 박 당선인의 비전을 펼칠 막강 외교 안보팀이 탄생할 수 있을까 하고.

 외교 안보의 가장 어려운 딜레마는 정책과 여론 간의 갭이다. 그래서 합리적 정책과 감정적 여론 간에 조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대통령의 과제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나라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 어떠한 것인지를 설명하고, 나라를 위해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납득시켜야 한다. MB는 이 두 가지 과제를 소홀히 했다.

 인수위가 ‘불통’이고 ‘깜깜’하다고 아우성이다. 국민에 대한 설명 없이 희생과 동의를 구할 수는 없다. 혹시 MB의 유산이 ‘망령’으로 나타나지 않을지 국민들의 자문은 계속되고 있다.

 사실 박 당선인의 ‘신뢰와 균형’ 개념은 어느 정도 국민적 합의를 향유하고 있다. 대선전에서도 여야 외교 안보 공약은 90%가 같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 외교 안보에는 후보자가 두 명이 아니라 한 명뿐이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여야 간에 이 정도의 외교 안보 공약 수렴을 보인 것은 아마도 민주화 이후 처음일 것이다.

 그러나 공약의 수렴과 국민적 동의는 다르다. 비전에 관한 합의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정책추진 과정에서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하면 그 비전은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적 자문을 잠재울 수 있는 박근혜 외교 안보 비전의 리트머스 테스트는 북핵 문제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들은 하나같이 북핵 불용을 천명해 왔다. 하지만 어느 정부도 이를 이루어 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 문제의 해법에 박근혜 외교 안보의 성패가 달려 있다.

 지금 여야·좌우를 막론하고 북핵문제 해결은 장기적 과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현상을 더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단계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법을 찾아내느냐다. 박근혜 외교 안보의 과제인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자문하고 있다. 과연 박 당선인의 외교 안보가 좌와 우, 여와 야의 대립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하고.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와 같은 좌와 우, 여와 야의 대립이 아니라,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이냐 아니냐의 대립이기 때문이다.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지난 정권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