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TV 출범 앞두고 방송매체 대립 표면화

중앙일보

입력

국내 지상파.케이블.위성TV 방송의 3대 축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디지털위성방송(사장 康賢斗) 이 최근 KBS 등 지상파TV의 프로그램을 위성으로 전국에 재송신하겠다고 밝히면서 지방 MBC.지역 민영방송과 케이블TV 업계 등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학계와 방송계에선 위성방송이 내년부터 오락성에 치우친 전국 프로그램을 재송신할 경우 지역방송의 고사(枯死) 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지역방송사들의 자체 프로그램 편성비율이 가뜩이나 낮은 마당에 상황이 크게 나빠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학계는 또 지역방송이 지역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고 국가 기간산업으로 지역경제에 영향을 주는 만큼 정책적으로 보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지방 MBC계열사 19곳과 부산방송 등 지역 민방 8곳의 연간 매출액은 5천억원에 이른다. 학계는 관련 산업의 고용 창출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역(지상파) .케이블.위송방송이 가입자와 광고시장 등을 둘러싸고 갈수록 큰 갈등을 빚어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이들 방송매체 사이의 대립은 위성방송측이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해 MBC.SBS 등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의 재송신을 추진하면서 불거졌다.

위성방송측 관계자는 "KBS1.2 등은 공익성 차원에서, MBC.SBS는 위성방송의 조기 정착을 위해 재송신하기로 내부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방송법상 KBS는 의무적이며,MBC.SBS는 재송신 금지조항이 없어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역 방송사들의 입장은 다르다. 19개 MBC계열사와 7개 지역민방은 최근 지역방송협의회를 만들어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최창규(崔昌圭) 지역방송협의회 의장은 "현행법상 지상파와 케이블 모두 허가받은 방송권역 밖에선 재송신을 못하게 돼 있으므로 위성방송의 경우도 금지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지역문화 보전과 지방 분권화 등을 위해서도 위성방송의 지상파 프로그램 재송신을 금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케이블 업계도 반발하고 있다. 케이블TV방송협회 정의영(鄭儀泳) SO(지역방송국) 사무처장은 "케이블 방송국마다 방송권역이 정해진 상황에서 위성방송만 지상파 프로그램을 전국에 재송신하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비난했다.

위성방송이 서울에 있는 중앙방송사의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방송시장을 지배하려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위성방송의 지상파 프로그램 재송신 논란을 계기로 그동안 잠잠했던 방송계의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불거져 상황이 더욱 꼬이게 됐다.

무엇보다 지역방송사들의 경쟁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학계.방송계에선 지역민방 등 몇 곳을 빼고는 지역방송사의 자체 편성비율이 10% 안팎에 불과하며 그나마 지역과 동떨어진 프로그램이 방송돼 지역 주민과 광고주 등에게 외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지방 KBS의 지역사간 통합, 지방 MBC의 공동제작 활성화, 지역민방의 'SBS 네트워크화' 탈피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한 방송계 인사는 "위성.케이블TV가 발달한 미국 등 외국과 달리 우리는 정부의 장기적 방송정책이 없었다"며 "이 때문에 민방.케이블.위성방송의 경우 시장 경쟁력을 갖추기 전에 경쟁 사업자를 진입시켜 대립.갈등 구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적정한 방송사 수, 지역방송의 제작.인력체계, 케이블TV의 소유구조, 방송사들의 위성방송 전환 재원마련 등에 대한 정책 방향이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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