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학] 펨토기술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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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3면

불가에서는 가장 짧은 시간을 찰라(刹那)라고 한다. 그 찰라의 시간을 잴 수 있는 시계를 개발하거나 초미세 가공을 할 수 있는 레이저가 나오는 등 펨토(femto)기술이 선보이고 있다.

펨토는 소수점 이하의 0이 무려 14개다. 이는 1천조분의1이다. 요즘 널리 알려진 나노보다 6개나 많다. 펨토초.펨토m라고 하면 인간이 만들거나 측량할 수 있는 시간.거리로서는 극한에 가까운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대학 페렌스 크라우츠 박사팀은 적외선 레이저로 아주 높은 주파수를 만들어 1. 8펨토초의 X선을 얻었다. 이 X선의 요철(凹凸:펄스)의 숫자를 세어 펨토초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광학시계를 만들 수 있다.

그 정확도는 1천조(兆)년에 1초 정도 틀릴까 말까 하다. 이렇게 정밀한 시계가 나오면 원자나 전자의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는 등 극한 순간 측정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 세계적으로 표준시에 사용하고 있는 원자시계보다 일곱배나 더 정밀한 것이다. 원자시계는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시계 중 가장 정확한 것으로 꼽히고 있다.

펨토 레이저는 라식수술이나 초정밀 가공 분야에도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펨토 레이저는 기존 레이저와는 달리 순간적으로 나오는 힘이 폭발적이어서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초미세 가공을 하는 데 아주 효용성이 크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같은 펨토 레이저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물질을 개발하지 못해 상용화하지 못했다. 엑시머 레이저 등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 열을 가해 정밀가공을 했다. 이에 따라 가공면 이외의 주변도 열에 의한 손상이 불가피했다.

미국 미시간대는 최근 펨토 레이저를 이용한 라식수술 장비를 개발했다.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도 받았다. 라식수술은 각막의 속살을 도수 조정에 필요한 만큼 걷어내 시력을 교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라식수술에는 자외선인 엑시머 레이저를 사용했다. 자외선 레이저는 순간적인 파쇄력이 부족해 펨토 레이저에 비해 수십배 긴 시간 한 곳을 쪼여야 각막 세포를 얇게 걷어낼 수 있었다. 자외선이 유전자에 흡수돼 유전자 변형 등의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펨토 레이저는 적외선을 사용하므로 유전자에 흡수되지도 않아 그 같은 문제가 없다. 각막 세포도 순간적으로 찍어내듯 파내기 때문에 열에 의한 주변부의 손상도 거의 없다.

앞으로 펨토 레이저 라식수술 장비가 기존 엑시머 레이저 장비를 대체할 날이 멀지 않았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세채 박사는 초정밀 가공용 펨토 레이저를 개발했다. 레이저 발진에는 티타늄 사파이어를 사용했다. 반도체 공정 중 하나인 포토마스크의 경우 이 레이저로 수선이 가능하다.

마스크 상의 머리카락보다 훨씬 더 가는 선 중 끊어진 부분을 이 레이저로 연결할 수 있다. 지금까지 포토마스크의 경우 그 같은 불량이 나면 수선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 버려야 했다.

펨토 레이저는 극미량의 단백질을 측정할 수 있는 바이오 칩 등의 가공도 쉽게 할 수 있다. 컴퓨터에 도면만 넣어주면 자동으로 칩에 홈을 파거나 구멍을 뚫을 수 있다.

정세채 박사는 "펨토 레이저는 세계적으로 상용화가 갓 시작된 첨단 기술로 초미세 가공이나 측정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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