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쪼갤 줄 아는 김연아 배우라면 당장 캐스팅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영화·뮤지컬보다 진한 감동이 주말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펼쳐진다. 복귀한 ‘피겨 여왕’ 김연아(23·고려대·사진)가 제67회 전국남녀 종합피겨선수권대회에 출전해 5일과 6일 각각 쇼트와 프리 프로그램을 연기한다. 김연아가 여자 싱글에서 1위를 할 경우 3월 캐나다 런던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얻는다.

 김연아의 국내 대회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매혹적이었던 컴백 무대 때문이다. 김연아는 지난해 12월 초 독일 NRW트로피 대회에서 20개월 만에 복귀해 올 시즌 여자 싱글 최고점수(201.61점)로 우승했다. 명품 점프만 훌륭했던 게 아니다. 뱀파이어에게 물린 여인으로(쇼트), 레미제라블의 순수한 소녀 코제트(프리 프로그램)로 변신한 김연아의 연기는 예술성 높은 작품에 목마른 피겨 팬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셨다.

 문화·예술인들은 김연아의 연기를 어떻게 봤을까. 뮤지컬 그리스 등을 연출한 정태영 감독은 “김연아 같은 배우가 있다면 당장 캐스팅하겠다”며 ‘피겨 여왕’의 연기를 극찬했다. 정 감독은 “레미제라블을 인상적으로 봤다. 찰나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뮤지컬에선 ‘감정을 쪼갠다’고 하는데 김연아의 연기는 순간순간이 살아있다”고 말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오페라의 유령, 캣츠, 미스 사이공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불린다. 김연아의 표현력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매력을 모자람 없이 담아냈다는 평가다. ‘A work’의 웅장한 선율에 맞춰 선 굵은 연기를 시작한 김연아는 에포닌의 주제곡 ‘On my own’에 이르러선 애절한 표정과 몸짓을 선보였다. 에포닌은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를 짝사랑한 여인이다.

 정 감독은 “속마음을 억누르는 듯한 간절함이 보인다. 김연아의 레미제라블은 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평했다. 현재 대구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코제트 역을 맡은 이지수(20)씨는 “지금까지 김연아 선수의 연기를 빠짐없이 챙겨 봤다. 김 선수의 코제트는 상당히 섬세하고 아름다워 나도 큰 영감을 받았다”며 감탄했다.

 문학계의 칭찬도 이어졌다. 이성호 한양대 영문학 명예교수는 한 칼럼에서 김연아의 작품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 교수는 “고뇌와 절망이 레미제라블의 한 축을 이루는 주제라면 희망과 기대 등 긍정적 감정이 작품의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다. 김연아는 두 가지 상반된 주제를 조화롭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김연아는 올여름 레미제라블 뮤지컬 영상을 보고 작품에 빠져든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아의 소속사인 올댓스포츠 관계자는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이 김연아에게 ‘레미제라블은 섬세하고 연약하지만 한편으로는 파워풀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김연아가 이를 소화하기 위해 감정 연기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귀띔했다.

손애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