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음악史 실은 '밤의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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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말러는 자신을 가리켜 '휴가 작곡가'라고 불렀다. 빈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으로 있으면서 매일 밤 지휘봉을 잡아야 했기 때문에 시즌이 끝나고 여름 휴가 동안 피서지에서 짬을 내 오선지와 씨름할 수밖에 없었다.

'밤의 노래'라는 별명이 붙은 말러의 교향곡 제7번 e단조도 1904년과 이듬해 여름 동안 완성됐다. 제1번 교향곡 '거인', 제2번 '부활', 제8번 '천인 교향곡' 등에 비해 접할 기회가 드물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관조를 담은 깊이있는 작품이다.

말러는 1908년 9월 체코 필하모닉을 이끌고 이 곡을 초연했다. 원래는 뉴욕심포니(현재의 뉴욕필) 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뉴욕 청중의 수준이 염려돼 프라하에서 열린 프란츠 요제프 황제 즉위 60주년 기념 페스티벌에서 초연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데다 충분한 연습시간까지 주었으니 안심하고 체코필에 초연을 맡긴 것이다. 오토 클렘페러.브루노 발터 등 쟁쟁한 후배들이 리허설 과정을 지켜보았다.

동구권의 명문 체코필(수석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이 말러의 교향곡 제7번을 들고 10년 만에 서울 무대를 찾는다. 굳이 자주 연주되지 않는 이 곡을 고른 것은 올해가 체코필엔 뜻깊은 해이기 때문이다.

68~90년 체코필의 사령탑을 맡았던 바츨라프 노이만(95년 타계) 의 80회 생일인 데다 1919~41년 수석지휘자를 지낸 바츨라프 탈리히의 서거 40주기, 말러의 서거 90주기, 그리고 무엇보다 체코필이 체코 국립오페라와 완전히 결별하면서 '자유'를 선언한 지 1백주년이 되는 해다.

특히 노이만은 체코필과 말러 교향곡 전곡을 녹음했고 89년 동유럽 민주화운동 당시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지휘하면서 시민포럼을 지지하는 등 격변기에 탁월한 영도력을 발휘했다.

그래서 2000~2001년 시즌 체코필의 주제는 '프라하의 음악사'다. 요제프 수크.보후슬라브 마르티누.안톤 드보르자크.구스타프 말러 등 체코필의 역사와 함께 해온 작곡가들을 집중 조명한다.

*** 메모

11월 1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1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5악장에다 1시간20분 이상 걸리는 말러의 교향곡 제7번을 프로그램에 넣으려면 협주곡 한 곡은 넣어도 서곡 정도는 생략해야 한다.

말러와 함께 연주되는 곡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이성주.16일) ,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7번 B♭장조 K.595'(17일) 다. 모차르트에선 초연 당시 모차르트가 그랬던 것처럼 아슈케나지(64) 가 피아노를 치면서 틈틈이 지휘도 한다.

77년 지휘자로 데뷔한 그는 96년 베를린도이체심포니를 이끌고 내한, 지휘 솜씨를 선보인 바 있다. 02-369-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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